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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에 살이 많으면 더 오랫동안 굶을 수 있을까?

생물체가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로 하는 최소한의 에너지양을 기초대사량이라고 하고, 신체를 움직이는 활동에 소모되는 에너지양을 활동대사량이라고 합니다. (* 대사량(기초+활동대사량) : 일정한 시간 동안 신체에서 발생하는 열량)

사람은 이를 유지하기 위해 주기적으로 음식물을 섭취합니다. 그런데 갑자기 조난 등의 상황이 닥친다면 음식물 섭취가 어려워질 수 있습니다. 이때 마른 사람보다 비만인 사람이 더 오랫동안 굶으면서 버틸 수 있을까요?

이해를 돕기 위해 일반적인 상황에서 설명해보겠습니다. 몸무게가 70kg인 성인 남성은 약 161,000kcal의 에너지를 체내에 비축하고 있습니다.

하루 동안 필요한 에너지양은 활동량에 따라서 1,600kcal에서 6,000kcal 사이이므로 이론적으로 따져봤을 때 1개월에서 3개월 정도 사용할 수 있는 에너지양을 체내에 축적하고 있습니다.

물론 아무것도 안 먹고 버틸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물과 소금 등을 섭취해주어야 체액과 전해질을 유지할 수 있으므로 최소한 이를 섭취하는 상황에서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음식을 섭취하지 못한 첫날에는 체내에 축적된 에너지 중 탄수화물이 분해되기 시작합니다. 이후 고갈되면 탄수화물의 분해로 얻을 수 있는 포도당을 얻지 못하게 되고, 만약 혈중 포도당 농도가 너무 떨어져서 저혈당 증상이 온다면 위험할 수 있습니다.

특히 뇌는 포도당을 에너지원으로 사용하므로 혈액 중에 충분한 당을 유지해야만 합니다. 이에 따라 인체는 혈당을 유지하는 것을 생존의 가장 중요한 목표로 설정합니다.

문제는 에너지 비축 효율성 때문에 대부분 에너지를 지방의 형태로 저장해놨다는 것이고, 이 지방은 거의 당으로 전환할 수 없다는 겁니다.

어쨌든 단백질을 최대한 보존하는 것이 생존에 중요하므로 이를 고려해 에너지원을 탄수화물에서 지방과 단백질 중심으로 변경해나갑니다.

일자별로 살펴보면 굶은 첫날에는 혈당이 떨어지면서 간에 축적된 지방에 있는 중성지방(TG, Triglyceride)을 이용해 포도당 신생합성(Gluconeogenesis, 탄수화물이 아닌 물질로 포도당을 만드는 대사 경로)을 시작합니다. 그리고 인체는 에너지를 얻을 혈당이 충분하지 않으므로 주요 에너지원을 지방과 단백질로 변경합니다.

근육의 단백질을 분해해서 에너지원으로 사용하는 과정에서 위와 같은 일이 일어나고, 인체가 단백질을 에너지원으로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평소에는 분해하지 않을 근육세포도 분해해 사용하기 시작합니다. 또한, 평소라면 재활용했을 췌장 분비물 속의 단백질까지 에너지원으로 분해해서 사용합니다.

그런데 단백질을 많이 분해해서 근육이 너무 줄어들면 생존에 오히려 불리해지므로 근손실을 최소화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굶은 지 사흘(3일) 정도가 지나면 간은 지방을 분해해서 케톤체라는 것을 생성하기 시작합니다.

* 케톤체 : 아세톤(acetone), 아세토아세트산(acetoacetate) 및 D-β-하이드록시부티르산(D-β-hydroxybutyrate) 등 3가지 물질의 총칭

왜냐하면, 지방산을 분해해서 에너지를 만드는 과정 중 생성되는 아세틸 CoA(Acetylcoenzyme A)를 산화할 에너지가 없기 때문이고, 이 아세틸 CoA가 케톤체로 계속 변환되기 때문입니다.

간에서 대량으로 방출되는 케톤체는 고갈된 포도당 대신 뇌의 에너지원으로 이용되기 시작하고, 뇌는 필요한 에너지의 30% 정도를 케톤체에서 얻습니다. 그리고 심장, 신장, 근육도 케톤체를 에너지원으로 사용하기 시작합니다.

굶은 기간이 수 주 이상으로 길어지면 간이 지방에서 케톤체를 합성하는 효율이 높아지고, 뇌의 주요 에너지원이 됩니다.

뇌는 하루 120g 정도 필요로 하던 포도당의 양을 40g으로 감소시키고, 단백질 분해도 초기 75g 분해에서 수 주가 지난 이후부터는 20g 정도로 감소시켜 굶는 상태에 적응합니다.

그런데 중성지방도 언젠가는 고갈됩니다. 고갈 후에는 케톤체 합성도 불가하므로 남은 에너지원인 단백질 분해가 촉진되어 주요 장기들이 분해됩니다. 이 과정에 들어서면서 서서히 죽게 됩니다.

과거에는 체내 단백질 축적량이 많아야 굶을 때 잘 버틸 수 있다고 여겼으나 최근에는 체내 지방 축적량이 더 중요하다고 여겨집니다. 따라서 지방이 많아야 단백질을 덜 소비해서 오랫동안 버틸 수 있으므로 이론적으로는 지방이 많은 비만인 사람이 굶는 것에 더 오래 견딜 수 있을 겁니다. 또한, 조난 상황이라면 비만인 사람이 체온 유지에 유리하므로 필요 에너지양이 적기에 역시나 유리합니다.

여기까지 주제의 의문을 이론적으로 해결했고, 실전편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의외로 굶는 사람의 생리에 관한 연구는 최근까지도 많이 진행됐습니다.

단식투쟁 등을 하는 사람들을 실험표본으로 삼을 수 있기 때문인데, 1998년 영국의학저널(BMJ)에 게재된 연구에 따르면 단식 60시간째에 정상 체중인 사람은 단백질 분해가 활발하게 시작됐으나 비만인 사람은 그렇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평소 체중의 10% 이상이 감소할 때 의학적인 감시(medical monitoring)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하는데, 비만인 사람보다 정상 체중인 사람 쪽의 체중 감소 속도가 더 빨라서 의학적인 감시도 더 빨리 요구됐습니다.

* 비만인 사람은 2주간의 단식 동안 평균 9.3%의 체중 감소를 보임

이는 생쥐를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굶는 상황에서 보통 생쥐와 비만인 생쥐를 비교했을 때 비만인 생쥐가 더 빠르게 체내 대사와 호르몬 농도를 변화시켜 상황에 적응했습니다. 당연히 생존에 유리한 행위이므로 더 오랫동안 굶을 수 있습니다.

성별에 따른 차이도 있습니다. 같은 신체질량지수(BMI, body mass index)일 때 여성이 남성보다 체내 지방 비율이 높은 덕분에 더 오랫동안 굶을 수 있습니다. 궁금증이 해결되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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