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때 왕이 치매에 걸리면 어떻게 됐을까?

치매는 노년층에서 흔히 발생하며, 인지 기능이 저하되는 등의 증상을 동반하는 질환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발병 원인은 다양하며, 현재로서는 완치가 어려워 병의 진행을 늦추는 것이 주요 치료법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치매는 누구나 걸릴 수 있는 질환입니다. 그렇다면 왕의 판단이 나라의 운명을 좌우하던 전제 군주제인 조선시대에서 왕이 치매에 걸렸다면 과연 어떻게 됐을까요?

일단 조선시대에는 의료 기술이 발달하지 않아 치매가 발병하기 전 다른 질병으로 사망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이로 인해 치매와 관련된 기록은 찾아보기 어렵지만, 장수한 사람들 중에서는 치매 증상을 보인 경우가 있었으며, 치매에 걸린 왕도 존재합니다.

조선 왕 중 가장 오래 살았고, 가장 오래 집권한 왕은 제21대 왕 영조입니다. 1694년(숙종 20년)에 태어나 1776년(영조 52년) 83세에 사망했는데, 그중 재위 기간이 무려 52년이나 됩니다.

이런 영조에 대해서는 말년에 치매로 의심되는 증상을 자주 보였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특히 사망 몇 년 전부터 증상이 극단적으로 나타나 의식이 혼미해지고 횡설수설하는 일이 잦았다고 전해집니다.

또한, 영조는 신하들에게 이치에 맞지 않는 명령을 내린 뒤 까먹기도 했습니다. 예를 들어 계획한 적이 없는 행사 소집 명령을 갑작스럽게 새벽 3~5시쯤 내려놓고, 명령에 따라 모인 신하들을 보며 소집한 사실을 기억하지 못하기도 했습니다.

이외에도 날짜를 자꾸 헷갈려서 설을 이미 지냈음에도 설에 내는 글을 쓰기 위해 저술 담당관을 부르는 등 치매 증상과 관련된 기록이 곳곳에서 발견됩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자신의 정신이 혼미하다는 점을 영조도 인지하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이와 같은 영조의 상태는 국정 운영에도 영향을 주었습니다. 정조가 세손 자격으로 직무를 대행하던 시기에 정조는 신하들에게 영조가 이치에 맞지 않는 명령을 내리면 무시하라고 지시했고, 영조도 자신의 명령이 잘못된 것 같으면 이후에 다시 한번 확인하라고 지시했습니다.

그런데 한번은 오늘날의 부총리급인 우의정 홍인한이 영조의 비이성적인 명령을 그대로 전파한 적이 있습니다. 앞서 영조가 새벽에 신하들을 소집해놓고 까먹은 이야기를 했는데, 이걸 전파한 사람이 바로 홍인한이었습니다.

정조는 이런 홍인한의 행동이 왕가를 견제하는 행동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리고 추후 자신이 왕위에 오른 후에 홍인한의 가문을 숙청하여 보복했습니다.

홍인한 입장에서는 비록 영조가 말이 안 되는 명령을 내렸어도 그것을 기록하고 따를 수 밖에 없는 신하의 입장에서 참 난감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앞서 조선시대는 의료 기술이 발달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그 수준이 과연 어느 정도였을까요? 어의라고 임금을 진찰하는 의사가 있습니다. 그 시대 의사 중에 최고만이 할 수 있는데, 사실 그 시대에는 몸에 맞는 약을 적절히 쓰는 능력이 더 중요한 요소로 여겨졌기에 왕의 진찰을 실질적으로 책임지는 최고위 직책은 궁궐 약국의 수장인 약방의 도제조였습니다.

또한, 어의가 왕의 병을 진단하거나 처방할 때 왕 스스로를 포함해 주변에서 치료 중 간섭하는 경우가 많았고, 이로 인해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대표적인 사고 사례는 조선 제17대 왕 효종에게 일어납니다. 효종은 몸 곳곳에 종기가 나서 고생한 왕으로 특히 머리에 큰 종기가 눈을 가려 앞을 보기 어려울 정도로 상태가 좋지 않았습니다.

효종은 이를 치료하기 위해 어의가 아니라 침술로 유명한 의관 신가귀를 불렀는데, 과거 효종의 엉덩이 쪽 종기에 침을 놓아 치료한 적이 있어서 그랬습니다.

어쨌든 치료를 위해 신가귀뿐 아니라 어의 유후성과 약방 도제조 원두표, 제조 홍명하 등이 모여 치료 문제를 의논했습니다. 이때 신가귀는 종기의 독을 뽑아내려면 침을 놓아 나쁜 피를 뽑아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유후성은 경솔하게 침을 놓으면 안 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 상황에서 효종은 신가귀의 뜻을 따르고자 했고, 신가귀가 침을 놓자 피가 나왔습니다. 이때만 해도 효종은 치료가 잘 되는 줄 알고 신가귀를 칭찬했습니다.

문제는 시간이 지나도 피가 멈추지 않았다는 것으로 의료 관리들이 각종 약을 써도 출혈이 멈추지 않아 효종은 급작스럽게 과다 출혈로 사망합니다.

이에 관련된 책임자들에 대한 처벌이 시작됐고, 효종 사망 후 즉위한 현종은 직접적인 사망 책임이 있는 신가귀에게 왕명에 따른 것이고, 과거 공로도 있으니 칼로 베어 죽이는 참형 대신 목을 졸라 죽이되 시신을 보존할 수 있는 교형으로 생을 마감하도록 해주었습니다. 그리고 이외의 의관들은 곤장형과 유배형만 내리는 선에서 처벌을 마무리합니다.

왕인 효종이 침술 치료 중 과다 출혈로 사망한 사건은 당시 조선의 의술 수준이 얼마나 열악했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궁금증이 해결되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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