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가 기본적으로 똥을 혐오스럽게 느끼는 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냄새가 지독한 것도 이유 중의 하나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질병을 유발할 수 있는 기생충이나 박테리아, 바이러스 등 다양한 병원체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질병을 예방하기 위한 행동 면역체계의 본능적인 반응으로 잠재적 위험 요소를 피하려는 심리적 방어 기제입니다.
그런데 남의 똥과 내 똥을 비교해서 생각해 봤을 때는 반응에 분명한 차이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공중 화장실에서 변기 뚜껑을 열었을 때 누군가의 똥이 있으면 굉장히 혐오스러워하는데, 내가 싼 똥을 봤을 때는 그 반응의 정도가 훨씬 약합니다.
그리고 이런 혐오의 대상은 똥뿐만이 아니라 땀, 구토, 소변, 타액 등 타인의 몸에서 나오는 모든 분비물이 해당합니다. 심지어 내 몸에서 나온 분비물도 해당하는데, 깨끗한 유리잔에 침을 뱉은 뒤 다시 마셔보라고 하면 혐오까지는 아니더라도 거부 반응을 보입니다. 왜 혐오 반응에 차이가 있는 걸까요?
이번 주제는 미생물학 박사 브린 넬슨의 저서 『똥-뜻밖의 보물에 숨겨진 놀라운 과학』을 통해 궁금증을 해결해 보려고 합니다.
심리학자 스티븐 테일러(Steven Taylor)는 갓 태어난 아들의 기저귀를 처음 갈 때 토할 뻔했다고 합니다. 이러한 행동은 우리의 면역체계가 병원균을 피할 수 있을 정도로 발달되어 있지 않다는 생각에 기초합니다.
그러니까 병원균이 너무 작아서 눈으로 확인할 수 없기 때문에 관련된 냄새나 모습, 촉각, 심지어 소리조차도 혐오 반응을 유발할 수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이런 혐오감이 실제로 진화한 방어 메커니즘인지를 알기 위해 생물인류학자 태라 세폰-로빈스(Tera Cepon-Robins)와 공동 연구자들은 질병 발병률이 높은 지역인 슈아르 원주민 마을 세 곳의 주민을 대상으로 혐오감으로 인한 손해와 이득 정도를 측정해 봤습니다.
일단 마을에 따라 생활 환경과 위생 조건에 차이가 있었는데, 상대적으로 현대적인 생활 방식을 따르는 마을 한 곳과 전통적인 생활 방식을 따르는 마을 두 곳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이 마을들을 대상으로 연구한 결과 현대적인 생활 방식을 따르는 마을 주민들이 혐오감의 강도가 상대적으로 높았고, 강도가 높을수록 박테리아 또는 바이러스, 대변으로 오염된 토양을 통해 전염되는 기생충으로 인해 발생한 염증으로부터의 방어에 더 유리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러면 나머지 두 마을은 방어 메커니즘이 작동하지 않은 걸까요?
연구진들도 작동하지 않은 사실에 놀랐으나 대변으로 오염된 토양의 기생충 알이 배아로 성장하는 데 약 3주가 걸리며, 이 배아는 수개월 동안 생존하다가 인간이 식물 등을 섭취함으로써 감염됩니다.
이 과정에서 오염된 토양은 오염되지 않은 토양과 구분하기 힘들고, 식량을 재배해서 먹어야 하는 환경에 혐오감이 생길 경우 다른 의미로 생존에 문제가 생깁니다. 즉, 문화적·환경적 요인이 혐오감의 강도에 영향을 미칠 수 있으나 피할 수 없는 환경에서는 유연하게 혐오감이 약해질 수 있다는 겁니다.
그리고 혐오감의 강도는 심리적 거리감의 영향도 받습니다. 심리학자 트레버 케이스(Trevor Case)가 2006년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가족, 특히 자신의 아이를 돌보는 보호자는 혐오감이라는 장애물을 쉽게 뛰어넘는 것으로 확인됩니다.
케이스는 실험을 통해 13명의 엄마에게 자기 아기가 찼던 기저귀와 다른 아기가 찼던 기저귀의 냄새를 맡고 비교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 결과 엄마들은 대부분 자기 아기가 찼던 기저귀의 냄새가 덜 역겹게 느껴진다고 대답했습니다. 이 응답은 정보를 숨기거나 바꾸고 했을 때도 동일했습니다. 또 대부분의 엄마는 아기의 더러운 기저귀에 대한 자신의 반응이 양육 시간의 흐름에 따라 똥 냄새가 덜 나고 덜 역겹게 느껴졌다고 응답해 주었습니다.
혹시나 기저귀에 따라 냄새 차이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연구진들에 따르면 기저귀 냄새는 모두 비슷할 정도로 강렬하고 압도적으로 불쾌했다고 합니다.
이 연구를 통해 알 수 있는 건 심리적 거리가 가까우면 혐오감이 약해지고, 또 앞서 알아봤던 것처럼 피할 수 없다면 그 대상에 혐오감을 느끼지 않게 된다는 겁니다.
또 혐오감은 학습에 따라서도 달라집니다. 심리학자 폴 로진(Paul Rozin)이 1986년 진행한 실험에서는 아이들에게 개똥 모양으로 만든 음식을 보여주면서 진짜 개똥이라고 말한 뒤 그 음식을 먹는지 관찰했습니다.
그 결과 생후 2년 6개월 미만의 유아는 절반 이상이 그 음식을 아무렇지 않게 먹었고, 나이가 들수록 먹는 비율이 상대적으로 낮아졌습니다.
이 부분에 대한 설명은 전염병학자 데이비드 월트너-테이스(David Waltner-Toews)의 설명을 통해 이해할 수 있는데, 똥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지리적인 특성에 기초한 복잡하고 다양한 문화사를 반영한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똥은 농촌 지역에서는 퇴비로 생각되나 도시 지역에서는 병원균으로 생각됩니다. 이는 사회적 규범과 문화적 학습을 통해 혐오감의 강도가 조절될 수 있고, 특히 타인의 분비물이 질병을 옮길 수 있다는 정보를 배우면서 분비물에 대한 혐오감이 형성되기도 합니다.
정리해보면 타인의 분비물은 병원체를 옮길 위험이 있기에 본능적으로 거부감을 느끼고, 타인은 나와의 심리적 관계도 멀기 때문에 더 큰 혐오를 유발합니다. 특히 분비물에 대해 혐오하도록 학습되어오면서 결과적으로 타인의 분비물에 대해 강한 혐오 반응을 보이게 됩니다.
이는 자신의 것도 마찬가지이나 혐오감은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적응하므로 내 똥보다 남의 똥이 더 혐오스러운 겁니다. 궁금증이 해결되셨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