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독불침(萬毒不侵)이란 어떤 독에도 해를 입지 않는 신체를 말합니다. 무협지에서 주로 볼 수 있는 설정인데, 이 경지에 도달하기 위한 방법의 하나로 소개되는 게 독에 꾸준히 노출되어 내성을 키우는 겁니다.
여기서 주제의 궁금증이 생깁니다. 정말 독을 계속 먹어 내성을 키우면 만독불침이 될 수 있을까요?
독과 약의 차이는 무엇일까?
먼저 독이란 무엇일까요? 독은 몸에 들어왔을 때 정상적인 생리 기능을 방해하거나 조직 손상을 일으켜 질병이나 사망을 초래할 수 있는 물질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일상에서 흔히 사용하는 물질도 용량을 많이 쓰면 사망에 이르게 만들 수 있습니다. 따라서 기준이 있어야 하고, 이를 위해 독성 물질을 평가하는 방법이 다양하게 존재합니다. 그중 흔히 보는 지표가 LD50(lethal dose for 50% kill)으로 한번에 투여했을 때 시험 개체의 50%가 사망하는 용량을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어떤 물질을 약으로 쓰려면 효과가 나는 용량과 위험해지는 용량 사이인 치료 범위(therapeutic range) 안에서 사용해야 하고, 이 범위를 넘으면 인체에 해가 되는 독성 용량(toxic dose)이 되므로 독과 약의 경계는 물질보다 용량이 더 중요합니다. 그리고 용량은 정해진 기준값이 아니라 개인의 대사 능력에 따른 차이도 있으므로 이 부분도 고려해야 합니다.
만독불침이 어려운 이유
또 독성 물질에 대한 반응이 몸에서 다양하게 나타나는 것도 고려해야 합니다. 뱀독처럼 직접적으로 응고 체계를 손상시켜 전신에서 출혈 경향성을 유발하는 물질도 있고, 벌독처럼 전신에 알레르기 반응을 유발해 쇼크를 일으키는 물질도 있습니다.
아니면 복어 독처럼 신경전달물질을 교란해 마비시키는 독도 있는데, 보다 시피 독은 종류가 다양하고, 작용 방식도 다양합니다. 즉, 독은 특정 물질의 절대적 성질이 아니므로 용량, 노출 시간, 개인의 대사 능력에 따라 차이가 클 것이고, 이런 이유로 독에 계속 노출된다고 하더라도 의학적으로 만독불침이 가능할 수 없을 것으로 판단합니다.
탈민감화와 약리학적 내성
물론 독에 대한 내성처럼 보이는 현상은 부분적으로 존재합니다. 의학에서 사용하는 개념 중 하나가 탈민감화(desensitization)인데, 이는 반복적이고 점진적인 노출을 통해 특정 물질에 대한 반응성을 낮추는 과정입니다.
대표적으로 알레르기 면역 치료에서 알레르기 유발 물질을 소량부터 단계적으로 투여하여 면역계의 과민 반응을 감소시킵니다. 이 방법은 만독불침의 과정처럼 보이나 면역 반응을 조절하는 것일 뿐이고, 실제 독성 자체가 사라지는 게 아닙니다.
다른 형태로 약리학적 내성도 있습니다. 약물을 반복 투여하면 대사 효소 유도, 수용체 조절, 신경계 적응 등이 일어나 동일 용량에서 효과나 독성이 감소할 수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알코올, 아편유사제, 일부 독성 물질에서 이 현상이 나타나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특정 기전에서만 나타나는 것이고, 용량을 늘리면 독성은 다시 나타나게 됩니다.
결국 우리가 내성이라고 부르는 현상은 대부분 독이 사라진 게 아니라 몸의 반응 방식이 일부 달라진 것뿐입니다. 즉, 만독불침은 무협소설 속의 재밌는 설정일 뿐입니다.
독이 약으로 쓰이는 경우
참고로 이미 많은 사람이 주기적으로 독을 맞고 있습니다. 바로 보톡스로 그 진짜 이름은 보툴리눔 독소(botulinum toxin)입니다. 이 독은 1g만으로 약 100만 명을 죽일 수 있는데, 극미량 사용하면 국소적으로 근육을 마비시킬 수 있어서 미용 목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겁니다.
이외에도 쥐약으로 사용되는 와파린(warfarin)은 혈액이 굳는 걸 막아주는 기능이 있어서 판막 시술이나 심방세동 등의 상황에서 쓰입니다. 이처럼 독이란 건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약이 될 수도 있습니다. 궁금증이 해결되셨나요?
– 원고 : 국제성모병원 신장내과 조교수 이진혁, 내과 전문의 임필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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