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서로에게 총을 겨누며 대치하는 장면이 자주 나옵니다. 이런 장면을 볼 때마다 드는 의문이 있을 텐데, 왜 먼저 총을 쏘지 않는 걸까요? 많은 사람이 한쪽에서 먼저 총을 쏘면 상대방이 대응 사격을 할 수 있으므로 총을 겨누고만 있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런데 대응 사격을 하기 위해서는 일단 목숨이 붙어 있어야 합니다. 총성을 듣고 대응 사격을 하기에는 너무 늦는데, 청각 신호가 뇌까지 가는 데 걸리는 시간은 약 0.08초입니다. 그리고 뇌가 청각 신호를 판단하고 근육을 움직이는 것까지 고려했을 때 아무리 빨라도 0.1~0.2초입니다.
이와 관련해 세계적인 100m 달리기 선수들의 출발 반응속도는 0.1~0.2초 사이입니다. 육상에서는 출발 반응속도가 0.1초 이하일 경우 부정 출발로 간주하는데, 인간의 반응속도로 나올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물며 훈련되지 않은 일반인의 반응속도는 더욱 느릴 겁니다.
그런데 공기 중 소리의 속도는 상온에서 초속 331m 정도입니다. 총알의 발사속도는 총의 종류에 따라서 천차만별이나 권총의 경우 초속 300~400m이고, 처음 발사속도는 이보다 2~3배 정도 빠릅니다.
대치하는 상황이라면 둘 사이의 거리가 그렇게 멀지 않을 것이고, 총알의 발사속도를 초속 500m 정도로 생각해보면 총성을 듣기도 전에 총에 맞게 됩니다. 즉, 대치 상황 중 먼저 총을 쏴서 상대방을 무력화시킬 수 있다면 먼저 쏘는 것이 유리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필요조건은 총을 쐈을 때 상대방을 완벽히 무력화시켜서 대응 사격을 할 수 없도록 하는 신체 부위를 정확히 맞춰야 한다는 겁니다.
총에 맞으면 왜 치명적일까요? 총상은 총알이 가진 운동에너지를 신체에 얼마나 전달할 수 있는지에 따라서 다릅니다. 또한, 총상은 총알의 질량과 속도 등의 변수 외에도 총알이 맞는 신체 부위의 매질 특성에 따라 다양하므로 예측하기 어렵습니다. (*매질 : 어떤 파동 또는 물리적 작용을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옮겨 주는 매개물)
따라서 보편적인 상황에서 이야기해보면 총알이 발사되면 직선으로 나아가는 것처럼 보이나 처음에는 큰 원을 그리면서 삐뚤게 회전하며 나아갑니다. 그러다가 회전하는 큰 원이 서서히 작아지면서 안정화되어 나아갑니다.
그런데 총알이 몸처럼 저항이 높은 매질을 통과하는 경우에는 나아가는 방식에 변화가 생깁니다. 안정화되어 나아가던 총알이 다시 큰 원을 그리면서 삐뚤게 회전하고, 심한 경우 탄두의 앞뒤 방향이 바뀌어 나아가는 전도 현상이 일어납니다.
전도 현상이 일어나면 총알과 신체 조직이 접촉하는 표면적이 넓어지고, 총알이 신체 조직에 훨씬 많은 운동에너지를 전달할 수 있으므로 조직 손상은 더 심해집니다.
총알의 운동에너지가 몸에 전달될 때 손상을 주는 방법은 총알이 신체 조직을 압박해 분쇄하거나 마찰로 인한 열상이 있는데, 이때 총알이 몸을 관통하면서 들어갈 때 만들어 낸 구멍보다 훨씬 큰 내부 공동을 만들어 냅니다. 즉, 총은 엄청난 살상력을 지녔습니다. 그래도 일단 대상을 맞춰야 피해를 줄 수 있고, 맞춘다고 하더라도 팔이나 다리, 엉덩이 등을 맞추면 상대방은 대응 사격을 할 수 있습니다.
앞서 필요조건으로 상대방을 완벽히 무력화시킬 수 있는 신체 부위를 맞춰야 한다고 했는데, 우리 인간에게는 생명유지에 필수적인 4대 장기(Vital organ)가 존재합니다. 뇌와 심장, 폐, 그리고 장기는 아니지만 세 가지 주요 장기와 관련한 중요 혈관들까지 포함해 4대 장기라고 합니다.
만약 이들 부위에 총상을 입으면 폐는 그나마 대응 사격할 여지가 있어도 나머지 장기는 대응이 사실상 불가합니다. 이외에도 목에는 중요한 해부학적 구조들이 많이 분포하고 있어서 맞으면 의식을 잃거나 전신마비 등의 증상이 발생할 수 있고, 척추에 맞으면 생존 확률은 높으나 순간적인 마비 증상이 발생할 수 있어서 마찬가지로 치명적입니다.
그리고 복부는 상대적으로 주요 장기가 적고, 장 조직은 유동성이 크므로 총알이 장을 통과할 때 상처가 크지는 않습니다. 만약 대치 상황에서 복부에 총을 맞았다면 대응 사격을 할 수 있을 겁니다.
정리해보면 두 사람이 총을 겨누며 대치할 때 먼저 쏘는 것이 유리합니다. 하지만 총을 쏘지 않는 이유는 복합적일 겁니다. 일단 총을 쏘는 행위는 법적인 문제를 포함해 많은 책임이 뒤따릅니다. 따라서 실제 총을 쏠 생각으로 총을 겨누며 대치하고 있다기보다는 자기방어 차원에서 위협 목적으로 겨누고 있었을 겁니다.
그리고 총을 쏘고자 했을 때 팔, 다리 등을 맞췄거나 아예 맞추지 못했다면 반대로 자신이 생명에 위협을 받을 수 있으므로 쉽게 쏠 수 없었을 겁니다. 또한, 상대방이 인질을 붙잡고 있다면 인질은 죽게 될 것이므로 명사수가 아닌 이상 선택이 쉽지 않습니다. 이런 다양한 이유로 총을 겨누며 대치하는 상황이 만들어졌을 것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궁금증이 해결되셨나요?
* 원고 투고 : 외과의사 설현우 (유튜브 ‘닥터설‘ 채널 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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