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를 킥스탠드(지지대) 없이 놔두면 바로 쓰러질 겁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페달을 밟아서 바퀴를 굴리면 균형을 잡으면서 앞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자전거가 균형을 잡는 방법은 손바닥 위에 막대기를 세우고 넘어지지 않게 유지하는 방법과 유사합니다.
그런데 균형을 잡는 방법과는 별개로 경사진 언덕에서 사람이 타지 않은 자전거를 밀어보면 완벽하지는 않아도 자기 안정성(Self stability)을 보이며 스스로 균형을 잡으면서 이동하려고 합니다. 즉, 자전거가 스스로 균형을 잡는 것은 사람의 조향 여부와는 별개로 어떠한 원리가 숨어있다는 의미입니다. 어떻게 가능한 걸까요?
프랜시스 위플(Francis John Welsh Whipple)이 1899년 논문(The stability of the motion of a bicycle)에서 강체 동역학 방정식(rigid body dynamics equation)을 이용해 자전거가 자기 안정성을 가진다는 것을 이론적으로 보였습니다.
아쉬운 점은 자기 안정성을 가지는 근본적인 이유를 설명 못했다는 것인데, 이와 관련한 내용은 클라인(Felix Klein, 독일의 수학자)과 조머펠트(Arnold Sommerfeld, 독일의 이론물리학자)가 1910년 출간한 ‘자이로 이론에 대해(Über die theorie des kreisels)’라는 책에서 나옵니다.
그들은 위플의 자전거 모델에서 자이로스코프 효과(Gyroscope effect) 때문에 자기 안정성이 생긴다는 것을 수학적으로 증명했습니다. 여기서 자이로스코프 효과는 회전하는 바퀴가 계속 동일한 방향으로 회전하려는 성질. 즉, 각운동량 보존 법칙(law of conservation of angular momentum) 때문에 회전축 방향이 바뀌지 않고 계속 유지하려는 현상을 말합니다.
이해하기 쉽게 위 영상을 보면 됩니다. 기계의 방향이 바뀌어도 회전축을 일정하게 유지하는 것이 보이시나요? 이처럼 자전거 바퀴도 충분한 각운동량이 있으면 넘어지지 않을 것으로 여겼고, 수학적으로 증명한 겁니다.
그런데 앞서 봤던 수학적 증명 과정 중 두 군데에서 부호를 잘못 사용하는 아주 치명적인 오류를 범했습니다. 따라서 그들의 주장은 신빙성이 다소 떨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이후 주목받은 것이 캐스터 효과(Caster effect)로 자기 안정성에 캐스터(caster=트레일(trail))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1970년 데이비드 존스(David Edward Hugh Jones, 영국의 화학자)가 주장합니다.
캐스터가 무엇이냐면 자전거 앞바퀴를 봤을 때 핸들축(조향축, steering axis)의 연장선이 지면과 만나는 지점이 있고, 바퀴가 지면에 닿는 지점이 있습니다.
이 둘 사이를 캐스터라고 하고, 이 캐스터가 조향차륜에 자기 직진성을 부여하는 덕분에 바퀴가 핸들축이 움직이는 방향으로 정렬할 수 있게 해줍니다.
여기서 중요한 내용은 포지티브 캐스터(positive caster, c>0)일 때만 자기 안정성이 생긴다는 것인데, 존스가 주장하는 내용은 자전거가 정지한 상황일 때만 고려해서 움직일 때의 다른 변수일 때는 설명이 잘 안 됩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2011년 사이언스(Science)지에 재미있는 논문이 게재됐습니다. 연구팀은 기존에 제시했던 효과들이(자이로스코프 효과와 캐스터 효과) 없는 자전거를 만들어 실험을 진행했는데, 자전거의 앞바퀴와 반대방향으로 회전하는 바퀴를 추가로 달아서 자이로스코프 효과를 없앴고, 네거티브 캐스터(caster<0)를 가지도록 해서 캐스터 효과를 없앴습니다.
그러니까 오직 적절한 하중 분포(weight distribution)만 가진 자전거를 만든 겁니다. 그렇게 만든 자전거의 모습은 아래와 같습니다. 일반적인 자전거의 모습은 아니나 재밌게도 이 자전거는 스스로 균형을 잡았습니다.
게다가 연구팀은 운동 방정식을 수학적으로 계산해 자전거가 자기 안정성을 지니기 위해서는 적절한 하중 분포가 중요하다고 밝혔습니다. 다만, 이외의 다른 효과 등도 복합적으로 작용해야 한다고 언급했습니다.
여기까지 자전거가 스스로 균형 잡는 원리에 관해서 알아봤는데, 설명이 명쾌하지는 않을 겁니다. 현재 자기 안정성의 조건은 알아냈으나 여러 변수를 복합적으로 따져봐야 하므로 단정지어 말할 수 없는 것이고, 여러 변수를 복합적으로 따져볼 수 있게 된다면 넘어지지 않는 자전거도 만들 수 있을 겁니다. 궁금증이 해결되셨나요?
- 원고 투고자 : 서울대학교 기계공학부 박사과정생 @엔너드 EngNe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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