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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일은 왜 며칠이라고 써야 맞는 걸까?

맞춤법은 어떤 문자로써 한 언어를 표기하는 규칙입니다. 만약 맞춤법이 없었다면 문맥에 따라 의미를 추론할 수 있는 일상 대화는 가능했을지 몰라도 문자 생활의 정확성과 명확성이 크게 저하됐을 겁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문맹률은 1~2% 수준입니다. 단어의 뜻을 몰라 이해는 못 할 수 있어도 대부분 국민이 쓰고 읽을 줄 압니다.

그래서일까요? 맞춤법을 틀리면 특히나 무시당하는 일이 많습니다. 많이 틀리는 맞춤법에 ‘않’과 ‘안’, ‘되’와 ‘돼’, ‘왠’과 ‘웬’, ‘로써’와 ‘로서’, ‘몇 일’과 ‘며칠’ 등이 있는데, 발음했을 때 비슷해서 그런지 많이 틀립니다. 이 영상에서는 ‘몇 일’과 ‘며칠’, ‘로써’와 ‘로서’에 관해서 알아보려고 합니다.

‘몇 일’과 ‘며칠’ 중 표기가 옳은 것은 ‘며칠’입니다. 이는 다소 이상한 부분이 있는데, ‘몇 년’, ‘몇 월’, ‘몇 시’, ‘몇 분’, ‘몇 초’ 등 시간 단위를 표현할 때 아래의 사진과 같이 표기합니다. 그런데 오직 ‘몇 일’만 표기가 바뀐다는 것이 이상하지 않으신가요?

사실 ‘몇 일’이라고 쓰는 사람들은 오히려 한글 맞춤법의 총칙을 잘 이해한 사람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한글 맞춤법의 제1항을 보면 [한글 맞춤법은 표준어를 소리대로 적되, 어법에 맞도록 함을 원칙으로 한다.]고 적혀있습니다.

표준어를 소리대로 적는다는 것은 한글이 소리대로 적는 문자인 표음문자라는 점에 착안한 자연스러운 규칙입니다. 하지만 이 규칙을 따르다 보면 문제가 생기기도 하는데, ‘꽃’이라는 명사에 조사를 붙여보면 그렇습니다.

예를 들어 ‘꽃도’, ‘꽃만’, ‘꽃이’를 소리대로 적으면 위와 같이 적어야 하고, ‘꽃’이라는 의미를 제대로 전달하기 어려워집니다. 그래서 ‘꽃’이라는 명사의 원형을 밝혀 적어야 합니다. 이런 사례들 때문에 총칙 제1항에 [어법에 맞도록 함]이라는 단서 조항이 붙은 것이고, 이를 표의주의 표기법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몇 일’은 ‘몇’과 ‘일(日)’이 결합한 구조이므로 오히려 맞는 표기가 아니냐고 반문할 수 있습니다. 이는 한글 맞춤법에서 ‘며칠’을 어떻게 규정했는지 살펴보면 되는데, [합성어 및 접두사가 붙은 말]을 규정한 제27항을 보면 됩니다.

기본 조항은 [둘 이상의 단어가 어울리거나 접두사가 붙어서 이루어진 말은 각각 그 원형을 밝히어 적는다.]고 규정합니다. 예를 들어 ‘꽃’과 ‘잎’이 결합한 단어인 ‘꽃잎’은 ‘꼰닙’으로 발음돼도 혼동이 없도록 ‘꽃잎’으로 각각 원형을 밝혀 적어야 합니다.

그런데 예외 조항인 [붙임2]를 보면 [어원이 분명하지 아니한 것은 원형을 밝히어 적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몇’에 ‘월’이 결합한 ‘몇 월’은 [며둴]로 발음합니다. ‘ㅊ’이 받침으로 있을 때 모음으로 시작하는 실질 형태소가 뒤에 오면 대표음인 ‘ㄷ’으로 교체한다는 음절의 끝소리 규칙을 적용한 결과입니다.

이 규칙을 ‘몇 일’에 적용해보면 [며칠]이 아니라 [며딜]로 발음해야 합니다. 하지만 ‘며칠’이라고 발음하는 이유는 ‘며칠’의 어원이 ‘몇’과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는 국어사적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16~17세기 문헌에서 ‘며츨’이라는 표기가 등장하는데, 현대에서 사용하는 ‘며칠’은 본디 ‘몇’과 ‘을’의 합성어였습니다.

당시에는 한글을 포함한 자료더라도 국·한문 혼용이었으므로 한자 표기였다면 한자로 표기했을 것이나 그렇지 않았다는 점, 더욱이 ‘日(날 일)’의 한자음은 중세·근대국어에도 ‘일’로 추정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을’이 현대의 ‘일(日)’을 뜻하는 순우리말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현대국어에도 남아있는 ‘이틀’, ‘사흘’, ‘나흘’의 표기와도 관련 있는데, 근대국어 시기에 ‘이틀’, ‘사ᄒᆞᆯ’, ‘나ᄒᆞᆯ’와 같이 나타났음을 고려하면 더욱 자명합니다.

그리고 중세국어 시기에 대부분 아래아의 음가(음운이 지닌 소릿값)가 적용되어 ᄋᆞᆯ와 같이 표기됐을 것이나 점차 소멸하면서 둘째 음절 이하에서 ‘ㅡ’로 표기상 교체된 것으로 보입니다.

이후에는 ‘며츨’의 ‘츨’은 센입천장소리인 ‘ㅊ’에 의해 ‘ㅡ’가 구개 모음 ‘ㅣ’로 동화되어 ‘며칠’과 같은 표기로 자리 잡게 됐고, 현대국어에서 ‘몇 일’을 ‘며칠’이라고 쓰는 겁니다.

또 많이 헷갈리는 맞춤법이 조사인 ‘로써’와 ‘로서’가 있습니다. 중세국어에서 ‘로써’는 ‘로ᄡᅥ’와 같이 나타납니다.

도구격 조사인 ‘로’와 현대의 ‘사용하다’에 해당하는 ‘ᄡᅳ다’의 활용형이 연달아 쓰인 표현으로 ‘~를 써서’라는 의미를 나타냈습니다. 이것이 줄어서 하나의 조사가 된 것이므로 ‘로써’는 앞의 명사가 어떠한 도구로써 사용됨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중세국어에서 ‘로서’는 ‘로셔’로 나타나는데, 이는 두 개의 조사가 연달아 쓰인 조사 연속체로서 부사격 조사 ‘로’와 보조사 ‘셔’가 결합한 겁니다.

‘셔’는 ‘이시-(다)’의 활용형인 ‘이셔’에서 파생된 보조사로 위치를 나타냅니다. 현대에서는 ‘서’로 나타나고, ‘멀리서’와 같은 형태로 사용됩니다. 따라서 ‘로셔’는 ‘~로 있다’라는 의미를 내포합니다.

정리해보면 ‘로써’는 ‘~를 써서’로, ‘로서’는 ‘~로 있어서’로 고칠 수 있고, 둘의 사용이 헷갈릴 때는 둘 중에서 적당한 것을 쓰면 쉽게 판단할 수 있습니다.

여기까지 ‘몇 일’과 ‘며칠’, ‘로써’와 ‘로서’에 관해서 자세히 알아봤는데, 이해하기 어려운 맞춤법도 국어사적으로 파고들면 명쾌한 답변이 존재합니다. 궁금증이 해결되셨나요?

– 원고 : 고려대학교 국어교육 전공 정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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