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사람은 어떤 건 기억하고, 어떤 건 잊어버릴까?

우리는 살아가는 동안 끊임없이 새로운 정보를 접합니다. 그런데 쏟아지는 정보 중에서 어떤 정보는 선명하게 기억에 남고, 어떤 정보는 금세 잊습니다. 여기서 주제의 궁금증이 생깁니다. 기억은 어떻게 작동하며, 왜 어떤 건 기억하고 어떤 건 잊어버릴까요?

이번 주제는 임상심리학자(의사)이자 신경학자인 차란 란가나스(Charan Ranganath)의 저서 『기억한다는 착각』을 통해 궁금증을 해결해 보려고 합니다.

뇌의 바깥쪽에 위치한 조밀하게 주름이 잡힌 회색 조직 덩어리인 신피질(Neocortex)의 모든 영역은 엄청난 수의 뉴런(Neuron)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신경세포인 뉴런은 뇌의 가장 기본적인 작업 단위로 사람이 세상으로부터 받아들이는 감각 정보를 뇌의 여러 영역으로 전달하는 역할을 합니다. 덕분에 우리는 감각을 느끼고, 움직이며, 감정과 생리적 반응을 경험할 뿐만 아니라, 생각하고, 학습하며, 기억을 형성할 수 있습니다. 이는 뉴런들이 서로 신호를 주고받으며 연결을 강화한 결과입니다.

기본적으로 뉴런은 모든 종류의 신경 계산에서 작은 역할을 하나 할 뿐이고, 맡은 작업을 해내기 위해 다른 뉴런과 연합하며, 이를 ‘세포 연합(Cell assemblies)’이라고 합니다.

이 과정을 이해하기 위해 신생아가 언어에 노출되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살펴보면 신생아는 언어를 학습하기도 전에 소리의 차이를 감지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소리를 문법적으로 분석해서 언어학적인 의미를 부여하는 방법은 아직 모르는 상태입니다.

다행히 사람의 뇌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들리는 소리를 이해하려고 애쓰면서 연속적인 소리 흐름에서 개별적인 단어로 나누고자 시도합니다. 그런데 이때 주변 소음으로 인해 아기가 들은 단어를 헷갈릴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아기의발이정말로예쁘고작아서신발이잘어울릴것같아’라는 연속적인 소리 흐름에서 개별적인 단어로 나눌 때 ‘발’과 ‘팔’의 발음을 헷갈릴 수 있습니다.

이때 뇌의 언어 센터 어딘가에서는 투표를 진행하는데, 대규모 뉴런 연합이 ‘발’에 표를 던질 수 있고, 그보다 작은 연합은 ‘팔’에 표를 던질 수 있습니다. 아니면 아예 다른 쪽에 표를 던진 소수 연합도 있을 수 있습니다.

표결 결과는 0.5초도 안 되는 짧은 시간 안에 집계되고, 아기는 표 수가 가장 많은 ‘발’로 듣게 됩니다.

그리고 여기서 학습이 등장합니다. 표결이 끝난 뒤 ‘발’을 지지한 뉴런들 사이의 연결은 강화되고, 지지하지 않은 뉴런들은 약화합니다. 이렇게 정보에 노출될 때마다 학습은 반복되고, 학습에 따라 뉴런들 사이의 연결 강도가 변합니다.

이처럼 새로운 경험에 대응해서 신피질의 뉴런 연결을 바꿀 수 있는 능력을 ‘신경가소성(Neuroplasticity)’이라고 합니다. 어른이 되면 신경가소성이 줄어들어 언어 등을 배울 때 아이보다 어려움을 겪는 편입니다.

어쨌든 반복적인 경험으로 세포 연합의 연결이 강해졌다면 그 경험에 대한 기억은 강화됩니다. 여기서 우리가 기억을 잊는 이유를 알 수 있는데, 어떤 경험을 기억하고자 할 때 그 기억을 떠올리기 위해서는 해당 뉴런 연합으로 이어진 길을 찾아야 합니다. 하지만 유사한 기억이 많으면 뉴런 연합이 서로 간섭하면서 특정 기억을 떠올리지 못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경쟁을 기억 연구에서는 ‘간섭 현상’이라고 부르고, 새로운 경험이 많아질수록 간섭 현상은 심해집니다. 즉, 사람은 기억을 잊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여기까지 기억의 작동 원리와 기억을 잊는 것이 자연스러운 현상임을 알게 됐습니다. 그렇다면 이 망각의 흐름 속에서 기억을 더 오래 유지하는 방법이 있을까요?

1956년 인지심리학이라는 신생 분야의 창시자 중 한 명인 조지 밀러(George Armitage Miller)의 논문에는 인간의 뇌가 머릿속에 보관할 수 있는 정보의 양에 한계가 있다고 주장합니다.

이 주장은 세월을 거치면서 몇 번이나 정당성을 인정받았고, 보관량에 한계가 있다면 기억해야 할 정보를 적절하게 묶어서 처리하면 뇌가 다뤄야 하는 양이 크게 줄어들어 동시에 더 많이 기억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이를 덩어리 짓기(Chunking)라고 하는데, 많은 사람이 의식하지 못하게 이미 하고 있는 방법입니다. 예를 들어 긴 숫자를 외울 때 끊어서 외우면 더 잘 외워지는 이유가 이런 원리입니다.

이는 체스 선수에게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선수에게 체스판에 놓인 말들을 몇 초만 보여주면 그 위치를 똑같이 재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체스의 룰을 따르지 않고, 아무 데나 놓아 놓고 보여주면 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바둑 경기 중에 맹기(盲棋)라고 눈을 가리고 하는 방식이 있는데, 수많은 대국을 치르면서 패턴을 익힌 덕분에 가능합니다. 그러니까 선수들은 그들의 노하우를 이용해 매우 빠르게 정보를 덩어리 지어서 기억하는 겁니다.

물론 덩어리 짓기만으로 사람이 방대한 양의 정보를 기억할 수 있게 되는 건 아닙니다. 그래서 사람은 망각을 일으키는 간섭 현상에 대응하기 위해 정보 정리 도구 중 하나인 도식(Schema)을 이용합니다.

도식은 뇌가 정보를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새로운 정보를 기존 지식과 연결하는 역할을 말하는데, 기억은 무작위로 저장되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새로운 정보를 조직하고 통합하는 방식으로 작동합니다.

예를 들어 이케아의 배치도를 그림으로 보고 외우는 건 어렵지만, 몇 번 다녀오면 머릿속에 그릴 수 있게 되고, 다른 지점에 가더라도 이 경험을 재활용해서 배치도를 쉽게 기억할 수 있는 식입니다.

도식의 방법 중 장소법(Method of loci)이라는 게 있습니다. 친숙한 장소나 길의 모양을 머릿속으로 그린 뒤 기억하고 싶은 정보를 그곳에 가져다 두는 방법으로 장소에 대한 기억은 이미 있어서 그 장소를 머릿속으로 둘러보면 정보를 쉽게 떠올릴 수 있게 됩니다.

예를 들어 이케아의 제품 카탈로그를 그냥 외우라고 하면 어렵겠지만, 매장에 몇 번 방문해 배치도를 익힌 상태에서 외우고자 한다면 공간과 제품이 연관되어 더 쉽게 외울 수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리고 무작위 단어를 외울 때 연관된 이야기로 만들어 기억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이 전략은 인간의 의식적인 기억이 효과적인 사고 과정임을 보여줍니다.

신경과학 분야의 최신 연구는 도식이 뇌에 어떻게 심어지는지에 관해 많은 정보를 밝혀냈습니다. 2001년 워싱턴대학에서 진행한 연구에 따르면 신피질의 일부 영역이 뇌에서 가장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는데도 버튼 누르기 같은 단순한 임무를 수행할 때는 덜 활성화된다는 사실을 발견합니다.

그런데 오히려 가만히 있거나 멍때릴 때 신피질의 일부 영역이 자동으로 활성화됐다고 합니다. 이 영역을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DMN)’로 명명했는데, 멍때릴 때 뇌는 쉬는 게 아니라 기억을 정리하고 새로운 패턴을 형성하는 과정을 거친다고 합니다. 즉, 도식(Schema)을 뇌에 심는 작업을 수행 중이라는 겁니다.

이 연구는 우리가 기억을 더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시사합니다. 그러니까 단순 반복 학습보다는 새로운 정보는 기존 지식과 연결 짓고, 충분한 휴식을 통해 뇌가 정리할 수 있도록 하면 기억 형성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겁니다. 궁금증이 해결되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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