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가장 많이 죽인 바이러스는 뭘까?

바이러스는 생물과 무생물의 경계에 있는 존재입니다. 숙주 없이는 살아갈 수 없지만, 숙주를 만나면 폭발적으로 증식하며 많은 생물체에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사람은 다양한 종류의 바이러스에 의해 감기에 걸리곤 하는데, 면역 시스템이 약해진 상태에서 감염된 사람의 침방울이나 주변에 남아있던 바이러스 입자 등에 의해 감염됩니다.

다행히 감기는 면역 시스템에 의해 자연스럽게 회복됩니다. 하지만 모든 바이러스가 면역 시스템에 의해 쉽게 처리되지는 않습니다. 때로는 면역 시스템을 압도하는 바이러스가 인간에게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기도 하는데, 전염병으로 이어지는 경우 대규모 사망자를 초래하기도 합니다. 여기서 주제의 궁금증이 생깁니다. 사람을 가장 많이 죽인 바이러스는 무엇일까요?

역사적으로 가장 많은 사망자를 발생시킨 바이러스는 천연두 바이러스입니다. 이 바이러스는 아주 오랜 세월 동안 전 세계적으로 퍼지며 인류에게 공포를 안겨주었는데, 일부 학자에 따르면 역사적으로 3~5억 명의 누적 사망자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다행히 1796년 천연두 백신이 보급되면서 감염률은 급격히 감소했고, 1977년 10월 26일 이후로 자연 감염은 더 이상 보고되지 않았습니다. 이에 따라 1980년 세계보건기구(WHO)에서 천연두의 박멸을 공식 선언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오랜 시간에 걸쳐서 사망자를 낸 바이러스 외에도 아주 단기간에 엄청난 사망자를 낸 바이러스가 있습니다.

이번 주제는 성균관대학교 의과대학 미생물학 고관수 교수님의 저서 <역사가 묻고 미생물이 답하다>를 통해 그 바이러스의 정체와 역사에 대해서 궁금증을 해결해보려고 합니다.

유럽을 중심으로 한 제1차 세계대전이 1914년 7월 시작되고, 1918년 11월 협상국의 승리로 끝남에 있어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1917년 미국의 참전입니다.

참전 결정 이후 1917년 가을부터 청년들이 군사 훈련을 받기 위해 군 캠프에 모여들었는데, 여러 캠프 중 펀스턴 캠프(Camp Funtson)에서 훈련받은 병사들은 미국의 다른 캠프로 가거나 바로 프랑스의 전쟁터로 보내졌습니다.

그런데 이 캠프에서 1918년 3월 독감 환자가 처음으로 발생한 뒤 신병훈련소의 의무실에 비슷한 증상의 환자가 100명이 넘게 드나들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시작된 독감은 병사들이 배를 타고 이동하면서 미국 동부 해안과 프랑스 항구도시로 퍼지기 시작했고, 프랑스 전역과 영국, 이탈리아, 스페인 등 전 세계로 번져갔습니다.

이 독감의 이름은 스페인 독감(Spanish flu)으로 중립국이라 언론 통제가 없었던 스페인 언론을 통해 사람들이 그 정체를 알게 됐기에 붙여진 이름입니다. 스페인 독감은 1차 유행 때 적지 않은 피해를 남기긴 했어도 전 세계를 공황에 빠뜨릴 만큼은 아니었습니다.

독감은 봄이 지나면서 잦아드는 것 같았으나 1918년 8월 27일 영국 플리머스에서 보스턴으로 향하던 함대에 돌연변이 바이러스가 나타납니다.

독성이 더욱 강화된 병원체와 이에 감염된 병사들이 미국 보스턴, 프랑스 브레스트, 서부 아프리카 프리타운에 도착한 뒤 이 세 지점에서 스페인 독감이 2차 유행하기 시작됐고, 1차 유행 때보다 더 신속하게 전 세계로 퍼져나갔습니다.

스페인 독감은 일반적인 계절성 독감과는 다르게 젊은 사람의 사망률이 매우 높았습니다. 환자들은 고열과 코피, 폐렴 등에 시달리다가 폐에 체액이 가득 찬 상태로 죽었는데, 인체가 병원체에 공격받으면 면역 시스템에서 사이토카인(Cytokine)이라는 물질을 만들어 염증 반응을 일으키는 방식으로 병원체를 제거합니다.

그런데 사이토카인을 너무 많이 만들어내면 면역 과민 반응이 일어나 심각한 염증이 생기고 폐에 체액이 쌓여 죽게 됩니다. 이 때문에 면역 시스템이 활발하게 작동하는 젊은 층에서 사망률이 유독 높았던 겁니다.

이 2차 유행은 1918년 12월을 기점으로 잦아들었으나 완전히 꺾이지는 않았고, 결국 1919년 3차 유행으로 이어집니다. 3차 유행 때는 이전과는 다르게 호주에서 시작해 유럽과 미국으로 전파됐는데, 호주가 방역을 완화하는 과정에서 많은 감염자가 나오게 된 것이고, 그나마 이때는 전쟁이 끝난 후라 확산 속도가 그렇게 빠르지 않았습니다.

결과적으로 스페인 독감은 매우 짧은 기간 동안 전 세계적으로 5,000만 명 이상의 사람을 죽인 뒤 서서히 사그라들었습니다. 이렇게 스페인 독감이 유행할 때 어떤 이유로 무엇 때문에 생겼는지를 밝히고자 노력했는데, 원인을 둘러싸고 논쟁이 많았습니다.

초기에는 여러 환자에게서 폐렴구균이 발견되어 폐렴구균을 의심했습니다. 이에 백신을 개발하고, 항혈청을 만드는 등의 노력으로 피해를 막고자 했는데, 폐렴구균이 원인 병원체는 아니라서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었습니다.

다음으로는 헤모필루스 인플루엔자를 의심했습니다. 스페인 독감 환자 70명을 비인두 면봉으로 조사했을 때 환자의 94%에서 이 세균이 나오기도 했고, 이를 주장한 연구자의 권위 때문에 이 판단에 반대하는 사람은 적었습니다.

하지만 잘못된 믿음으로 인해 스페인 독감 환자에게서 이 세균의 백신과 항혈청을 개발하려는 수많은 연구는 실패로 돌아갔고, 다른 원인을 생각해보게 됐습니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세균과는 다른 미생물로 인식되는 여과성 병원체. 즉, 바이러스뿐이었는데, 연구자 윌슨 스미스(Wilson Smith)에게 독감에 걸린 패럿이 재채기 하자 스미스가 독감에 걸렸고, 스미스에게서 분리한 바이러스를 통해 백신 개발하면서 독감의 감염원이 바이러스라는 사실을 인정받음으로써 바이러스가 스페인 독감의 원인임이 밝혀집니다.

그리고 바이러스의 진짜 정체를 밝히기 위해 노력한 끝에 스페인 독감 바이러스는 80년 만에(1918년) H1N1 A형 독감 바이러스로 최종 확인됐습니다.

A형 독감 바이러스를 전자현미경으로 보면 마치 민들레 한 송이처럼 보입니다. 아래의 그림에서 헤마글루티닌은 혈구응집소로 적혈구를 응집하는 기능을 하는데, 이 단백질이 숙주세포의 세포막에 존재하는 세포 수용체와 결합해서 세포질 내로 들어갑니다.

이후 복제를 바로 하는 게 아니라 세포의 핵 안으로 들어간 이후에 복제가 이루어지고, 핵 속에서 복제된 유전물질은 세포질로 이동한 후에 숙주세포의 유전자들에서 만들어진 물질들을 이용해 한꺼번에 엄청난 양의 새로운 바이러스 입자를 조립합니다.

독감 바이러스는 DNA에 비해 불안정한 물질인 RNA를 유전물질로 사용하는데, 오류가 생겨도 고치는 교정 메커니즘이 없습니다. 따라서 헤마글루티닌과 뉴라미니데이스에 변이가 쉽게 생겨서 매년 그해에 유행할 독감을 예측해서 백신 접종을 새롭게 하는 겁니다.

그리고 이렇게 변이가 잘 일어나는 특징 때문에 인류는 조류 인플루엔자(Avian influenza) 바이러스를 더욱 신경써서 관리하고 있는데, 조류 인플루엔자가 사람에게는 감염력은 떨어지나 언제 변이가 일어나서 인류를 위협할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2024년 12월 중순 미국에서 고병원성 조류 인플루엔자(H5N1)에 걸려 입원한 환자가 2025년 1월 6일(현지시간) 사망한 사례가 최초로 나왔습니다. 불행 중 다행으로 지역 내에서 추가 발병 사례나 사람 간 전염이 이뤄진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여기까지 스페인 독감의 역사와 원인, 증상 등을 알아봤습니다. 어떻게 보면 제1차 세계대전이 대유행을 이끌었다고 할 수 있고, 병사들이 단체로 감염되지 않았더라면 전황이 달라졌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또한, 이 바이러스는 종전 협상장에서도 큰 역할을 했는데, 당시 파리에 머물던 우드로 윌슨 미국 대통령이 독감에 감염되어 협상의 전권을 프랑스의 조르주 클레망소(Georges Clemenceau) 총리에게 위임하게 됐습니다.

프랑스는 독일로부터 막대한 피해를 입었기에 복수심이 엄청났고, 클레망소는 엄청난 전쟁 배상금과 탄광 지대로 유명한 알자스-로렌 지방(Alsace-Lorraine)의 반환, 공군의 해산과 육군 병력의 제한, 식민지 포기 등 독일에 가혹한 조항을 강요했습니다.

이로 인해 독일은 경제난에 시달리게 됐고, 국민 사이에서 외국에 대한 반감과 함께 국가주의가 싹텄으며, 혼란스러운 정세가 지속됐습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히틀러의 나치는 독일 국민 사이에 파고들어 정권을 잡았고, 세계는 다시 한번 전쟁을 치러야 했습니다. 이 작디작은 바이러스가 한 일이라고 하기엔 너무나도 막대한 일인 것 같습니다. 궁금증이 해결되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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