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토하면 위장에 남아있는 음식물 등의 일부가 다시 입 밖으로 배출됩니다. 보통은 구토 후 다시 먹을 생각을 하지 않으나 위가 일부 비워졌으니 다시 먹는다면 물리적으로 먹을 수 있는 상태가 됩니다.
여기서 주제의 궁금증이 생깁니다. 사람은 몸이 좋지 않을 때 약을 먹는데, 약 먹고 나서 구토하면 약을 다시 먹어야 할까요? 아마 먹은 직후 구토했으면 다시 먹는 게 맞다고 생각할 겁니다. 그러면 15분 후에 구토했을 때도 다시 먹는 게 맞을까요? 30분이나 60분이 지난 다음은 어떨까요?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약 먹고 구토했을 때 다시 복용해야 하는지의 판단은 약동학(Pharmacokinetics)적인 관점에서 “한 번의 약물 용량이 몸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중요한 약인가”와 “약물이 체내에서 꾸준히 일정 농도를 유지해 줘야 하는 약인가”라는 두 질문에 대한 답으로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전자의 경우라면 구토 후 재복용이 필요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예를 들어 호르몬제(경구피임약), 항경련제, 면역억제제, 파킨슨병 치료제, 일부 항부정맥제, 특정 상황의 항생제와 같이 혈중 농도 유지가 치료 결과와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약물군은 재복용을 고려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지만 후자의 경우인 고혈압, 당뇨, 고지혈증과 같은 만성질환에 쓰이는 약물은 장기간 노출을 전제로 하므로 한 번 복용을 놓쳤다고 해서 단기적으로 몸에 이상이 나타날 위험성은 크지 않습니다. 오히려 구토했을 때 여전히 약물이 몸에 남아서 얼마나 노출됐는지 모르는 상태이므로 재복용에 신중해야 합니다.
이는 많은 만성질환 약물이 작용 발현까지 시간이 걸리는 대신 약효가 반으로 줄어드는 반감기가 길고, 약물의 흡수·투여 속도와 배설 속도가 평형을 이루어 체내 약물 농도가 일정 수준으로 유지되는 항정 상태에서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즉, 약물 효과가 단일 용량이 아닌 누적된 체내 농도에 의해 결정됩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약물의 흡수 과정을 살펴보겠습니다. 경구 투여 약물은 대부분 위에서 용해된 뒤 소장에서 흡수되고, 간을 거친 뒤 전신에 퍼집니다. 이 과정에서 약물이 혈중 최고 농도에 도달하는 시간을 Tmax라고 하고, 약물의 혈중 흡수 속도를 간접적으로 반영합니다.
약을 복용 ‘직후’ 구토했다면 체내에 충분히 흡수될 틈도 없이 빠져나가 버리므로 약을 재복용해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때 Tmax가 짧은 약은 특성상 일정시간(15~30분) 이후 구토했다면 이미 상당 부분 흡수되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반면 Tmax가 긴 약은 체내에서 흡수가 천천히 진행되어 구토가 언제였는지에 따라 체내 노출된 양이 달라져 판단이 어렵습니다. 특히 천천히 녹게 만들어진 서방형 정제약은 구토했을 때 약물이 전부 배출된 게 아니라면 재복용 시 과다 복용이 될 수 있어 신중해야 합니다.
또 하나 중요한 개념은 치료 농도 범위(Therapeutic range)입니다. 치료 농도 범위가 좁은 약물은 혈중 농도의 작은 변화도 몸에 영향을 크게 미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구토 후 재복용 여부를 신중히 결정해야 하고, 대표적으로 항경련제, 항부정맥제, 면역 억제제 등이 해당합니다.
반대로 치료 농도 범위가 비교적 넓고 장기 노출이 중요한 만성질환 약물은 한 번 복용을 건너뛰어도 약효가 여전히 남아 있으므로 몸에 미치는 영향이 제한적인 경우가 많습니다.
결론적으로 구토 후 약의 재복용 판단은 약효가 유지되게 하면서도, 과다 복용해 부작용이 생기지 않게 균형을 잡는 전략이 필요합니다. 다만, 많은 변수가 존재하므로 이를 일반인이 판단하기에는 어려움이 있긴 합니다.
어쨌든 약을 먹은 다음에 구토하는 상황이 성인에서는 흔치 않습니다. 그런데 소아에게서는 종종 발생하는데, 약의 불쾌한 맛이나 기존의 메스꺼움, 통증, 불안감 등이 원인일 수 있습니다.
보호자 입장에서 약을 먹은 아이가 구토하면 주제의 궁금증을 가지게 됩니다. 하지만 앞서 말한 것처럼 변수가 워낙 많아 명확한 가이드라인이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이와 관련해 스웨덴의 소아과, 임상약리학 및 약학 분야 전문가 그룹이 권장 조치를 개발해 게재한 논문이 있습니다. 정리해서 이야기해 보면 15분 미만일 때와 15분에서 30분 사이, 30분에서 60분 사이, 60분 이상일 때로 나누어 정리했는데, 아래의 표와 같습니다.
다만, 이 표도 참고용이고, 실제 판단은 약 종류와 제형, 아이 상태, 토사물에 약이 보였는지 등 복합적으로 확인해야 합니다.
이를 감안해서 보면 구토 후 15분 이내일 때는 재복용을 고려하는 경우가 많았으나 일부 예외 약물이 있었습니다. 15~30분 사이에서는 약물 특성과 구토 잔여물, 아이 상태에 따라 대응하는 것을 권장했으며, 30~60분 사이에서는 일부 약물 외에는 재복용하지 않는 걸 권장했습니다.
그리고 60분이 지나 구토했을 때는 약 잔여물이 보이지 않는다면 위를 지났을 가능성이 커 재복용이 일반적으로 필요하지 않다고 판단했습니다. 궁금증이 해결되셨나요?
– 원고 : 국제성모병원 신장내과 조교수 이진혁, 내과 전문의 임필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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