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나 드라마에서는 필요에 따라 전화번호를 노출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매우 평범한 장면이지만, 해당 장면을 보는 사람 중의 일부는 영화나 드라마에서 나온 전화번호로 실제 전화를 걸곤 합니다.
전화를 거는 이유는 단순 호기심 때문입니다. 문제는 이런 호기심을 가진 사람이 소수가 아니라는 것으로 그들 모두가 전화를 걸면 받는 사람 입장에서는 매우 불편할 수 있습니다. 물론 해당 전화번호가 존재하지 않는 번호라면 문제될 것은 전혀 없습니다. 하지만 실제 존재하는 번호라면 분명 문제가 있습니다.
본인이 영화나 드라마에서 나온 전화번호의 주인이라고 생각해보길 바랍니다. 시도 때도 없이 모르는 사람에게서 전화가 걸려 오고, 전화를 받으면 영화나 드라마에서 나온 전화번호라 호기심에 해봤다는 이야기를 듣게 될 겁니다. 처음에는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겠지만, 계속 그런 전화가 온다면 일상생활에도 지장을 줄 수 있습니다.
이런 문제가 생길 수 있어서 보통은 전화번호를 모자이크해서 내보내거나 아예 번호 없이 이름만 뜨게끔 해서 연출하는 편입니다. 그런데 해당 장면에 모자이크를 하면 보는 사람의 몰입감을 방해해서 흐름을 깰 수 있습니다.
영화나 드라마가 사람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라고 해도 감정을 이입해서 보는 사람이 많기 때문인데, 이런 이유로 일부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흐름을 방해하지 않고 현실감을 높이기 위해 모자이크 없이 실제 전화번호를 노출하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누구의 전화번호를 노출하는 걸까요? 꽤 다양한 케이스가 있는데, 아무 전화번호나 사용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악의를 품고 그랬다기보다는 설마 전화를 거는 사람이 있겠느냐는 생각에서 벌인 일입니다. 그리고 설마가 사람을 잡아서 피해자가 발생해 사과 또는 보상을 해준 사례가 많습니다.
이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촬영을 위해 전화를 따로 개통하기도 하고, 해당 작품의 관계자 전화번호를 사용하기도 합니다. 즉, 자체적으로 피해를 감수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위와 같은 고충은 2011년부터 나아졌는데, 최익환 감독의 아이디어로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에서 한국영화 스크린 노출용 전화번호 제공 서비스를 진행한 덕분입니다. 그러니까 영진위에서 전화번호 몇 개를 장기 대여하고, 영화를 찍을 때 쓰도록 해주는 서비스입니다.
덕분에 영화 ‘걷기왕(2016)’, ‘아수라(2016)’, ‘나의 사랑 나의 신부(2014)’ 등에서 같은 전화번호가 나옵니다. 다른 영화에서도 영진위에서 제공하는 전화번호를 이용해 영화에 노출하거나 앞에서 말한 방법으로 전화번호를 노출합니다. (※ 걷기왕에서는 주인공의 선배 전화번호로, 아수라에서는 주인공의 아내 전화번호로 나옵니다)
그리고 전화번호뿐만 아니라 자동차 번호판도 같은 경우가 있는데, 영화 ‘끝까지 간다’와 ‘터널’에서 나오는 자동차의 번호판은 ’05마 8734’로 똑같습니다. 이는 김성훈 감독이 예전에 쓰던 차량 번호라고 합니다.
참고로 미국에서는 각종 창작물에 사용할 수 있게끔 해놓은 전화번호가 따로 있고, 555로 시작하는 전화번호가 해당합니다. 555로 시작하는 전화번호를 사용하는 이유는 1919년까지 모든 전화는 전화교환원을 거쳐야 했는데, 그때는 전화번호 방식이 지금과 많이 달라서 단어와 5자리 숫자 코드로 구성됐습니다.
여기서 단어는 그 지역을 표현할 수 있는 것을 쓰려고 했고, 숫자로 단어를 표현하고자 했습니다. 전화 키패드를 보면 숫자에 해당하는 문자가 있는데, 이를 활용해서 표현했습니다. 예를 들면 펜실베이니아(Pennsylvania) 6-5000은 73-6-5000으로 전화하면 됐고, 버터필드(Butterfield)는 28로 표현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원리에 따르면 숫자 5에 해당하는 문자 J·K·L은 55로 했을 때 표현할 수 있는 지역이 별로 없었다고 합니다. 즉, 555는 미국 전화 시스템에서 사용하지 않는 번호 조합이라서 혹시나 피해 보는 사람이 없도록 555로 했다고 합니다. 궁금증이 해결되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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