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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볶이는 원래 빨간 음식이 아니었다고?

떡볶이는 국민 간식이라는 별명이 매우 잘 어울리는 음식으로 많은 국민이 즐겨 먹는 음식입니다. 현대의 떡볶이는 매우 다양한 방식으로 만드는데, 통상적으로 알려진 떡볶이는 적당한 길이의 가래떡과 어묵, 다양한 채소 등이 들어가고, 고추장으로 맛을 낸 빨간 양념이 있는 모습입니다.

근데 원조 떡볶이는 지금과 많이 다릅니다. 이와 관련한 자료는 여러 고문헌(古文獻)에서 찾을 수 있었는데, 고문헌 속 떡볶이는 돼지고기나 소고기를 넣기도 했고, 채소와 고급 재료도 많이 활용했습니다.

원조 떡볶이와 현대 떡볶이의 가장 큰 차이는 양념을 고추장이 아닌 간장으로 볶았다는 겁니다. 당시 고급 요리에 속했던 떡볶이는 궁중 또는 사대부가에서 즐겨 먹었으며, 의례상에도 올라왔다는 문헌들이 존재합니다. 근데 이랬던 떡볶이가 어떤 계기로 빨갛게 변했을까요?

현대의 떡볶이는 6·25전쟁 휴전 이후 탄생한 마데인 코리아(made in korea) 음식입니다. 6·25전쟁은 1950년 6월 25일 새벽 북한군이 불법 남침함으로써 시작된 전쟁으로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을 체결할 때까지 약 3년간 진행됐습니다.

가슴 아픈 이 전쟁이 떡볶이와 무슨 관련이 있을까 싶은데,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기보다는 휴전 직후 우연히 탄생했기에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는 정도의 관련성이 있습니다.

빨간 떡볶이가 어떻게 탄생했는지 일화를 알아보면 당시 서울에 사시던 마복림 할머님이 6·25전쟁 휴전 직후 중국집 개업식에 참석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마복림 할머님이 개업식용 공짜 떡을 먹는 와중에 실수로 짜장면 위에 떡을 떨어뜨렸고, 짜장면 양념이 묻은 떡을 먹게 됐는데, 생각보다 맛이 좋았습니다. 그래서 고추장으로 맛을 내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됐고, 같은 해 이 생각을 실천합니다. 할머님은 신당동에서 노점상으로 장사를 시작했고, 우리가 먹는 떡볶이는 바로 이렇게 탄생했습니다.

이외에도 떡볶이처럼 6·25전쟁 전후로 형태가 달라진 음식이 또 있는데, 바로 국민 야식인 ‘족발’입니다. 족발을 좋아하지 않아도 족발로 유명한 지역이 ‘장충동’이라는 소문은 들어 봤을 겁니다. 장충동이 족발로 유명한 이유는 현대의 족발이 탄생한 곳이기 때문인데, 6·25전쟁 당시 피난민들이 대거 서울로 유입되면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통계 자료를 보면 6·25전쟁 후 우리나라의 인구가 약 135만 명이 늘어났습니다. 전쟁으로 인해 군인과 민간인의 인명피해가 130만 명 이상으로 추정되는 상황에서 인구가 더 늘어난 것은 전쟁 기간에 발생한 인구의 사회적 이동 때문입니다.

가진 것 없이 남한으로 온 피난민들은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하고 한반도에서 철수하면서 남기고 간 적산가옥(敵産家屋)에 들어가서 살았습니다. 이때 평안도 출신의 피난민이 고향에서 해먹던 방식의 족발 요리를 오향장육이라는 중국요리와 접목해 현대의 족발을 개발했습니다. 맛이 좋았기에 입소문을 탔고, 널리 알려지면서 ‘족발은 장충동이 유명하다’는 말이 지금까지 나오는 겁니다.

우리에게 행복을 주는 국민 음식 떡볶이와 족발이 원래는 서민들의 애환이 깃든 음식이었다는 점은 참 의미가 있습니다. 참고로 2020년은 6·25전쟁 발발 70주년입니다. 떡볶이와 족발을 먹게 된다면 잊어서는 안 될 민족의 아픈 역사를 기억해주셨으면 합니다.

그리고 국방부에서는 6·25전쟁 당시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호국 용사들의 유해를 찾아 가족의 품으로 돌려보내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전사자 신원 확인을 위한 유가족 DNA 시료 채취에 많은 관심과 참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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