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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 왕과 평민들의 합궁은 어떻게 이루어졌을까?

<외국 왕>

과거 우리나라의 왕들이 많은 상궁이 지키고 있는 가운데에서 합궁했다는 이야기는 다소 충격적일 수 있습니다. 현대인이라면 납득할 수 없을 텐데, 다른 나라의 역사를 살펴보면 생각보다 흔한 일이였습니다.

왜냐하면, 당시 합궁은 물리적으로 결혼의 완전한 성사를 의미했기에 가까운 사람들이 그들의 사랑을 직접 확인 후 공증하는 의미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유럽에서는 이를 Bedding ceremony라고 칭했고, 우리나라에서는 합방례(合房禮)라고 칭했습니다.

유럽의 베딩 세레머니를 살펴보면 일반적으로 결혼식 직후 첫날밤에 성직자가 침대에 성수와 와인을 뿌려서 축복을 내려줍니다. 그 뒤에 가까운 사람들 대부분이 침대 옆에서 합궁하는 과정을 지켜보았고, 이때 합궁이 시작되기 직전 방을 나가서 프라이버시를 지켜주는 경우도 있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의식은 하층민부터 왕까지 모든 신분에서 행해졌습니다. 기록상 영국에서 마지막으로 베딩 세레머니를 한 왕의 사례는 헨리 8세카탈리나 다라곤 왕녀의 결혼입니다.

서양 왕의 합궁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살펴보면 결혼 축제 중 레이디 오브 더 베드 챔버(Lady Of The Bedroom)라는 지위를 가진 여성이 침실로 왕비를 인도하고, 코티어(Courtier)라는 지위를 가진 남성은 침실에서 왕의 옷을 벗겨줍니다.

그리고 침실에 수많은 사람들이 자리를 잡고 합궁하는 과정을 보며 이들을 응원해주는데, 합궁 다음날 레이디 오브 더 베드 챔버가 침대 시트를 확인해 합궁 및 결혼이 성사되었음을 확인했습니다.

<평민>

앞서 알아본 내용과 비교하면 우리나라의 합방례는 비교적 얌전한 편입니다. 서민들의 합궁 과정을 살펴보면 유럽과는 달리 대체로 신부가 먼저 기다리고 신랑이 뒤에 들어갑니다. (*전라도 강진 지역은 신랑이 먼저 들어간다고 합니다.)

저작권 정보표시 : 한국민속촌 134, 채지형, 공유마당, CC BY

합궁을 시작할 때는 신랑과 신부가 서로의 옷을 벗겨주는 것을 예법으로 여겼고, 이때 주변 사람들은 신방을 지켜준다는 명목 하에 신방 앞에서 “상직(숙직)한다”고 표현하며 문에 구멍을 내어 엿봤습니다. 그리고 신랑이 옷깃이나 부채 등으로 촛불을 끄면 문 앞에서 물러났습니다.

저작권 정보표시 : 옛날전통문문양창문창살_004, 박종진, 공유마당, CC BY

옛날에는 이처럼 왕부터 평민에 이르기까지 합궁 시 사생활이 잘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아무래도 공동체 의식이 강했던 것이 이유도 있을 것이고, 당시에는 개개인을 보호할 수 있는 강력한 행정조직이나 경찰 등의 치안조직이 존재하지 않았기에 주변 사람들끼리 끈끈한 관계를 맺으면서 서로를 지켜나간 것으로 여겨집니다.

이런 맥락에서 합궁을 직접 확인하는 방식도 공동체 문화의 일환으로 추정할 수 있고, 그때 그 시절에는 당연하게 여겨졌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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