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국제적이고 주요한 운동대회에서는 도핑 검사를 합니다. 도핑은 경기의 성적을 조작하려는 목적으로 약물을 복용하거나 주사하는 행위를 의미하는데,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는 방법으로 여겨져 일부 선수가 사용하곤 합니다.
도핑 검사를 하는 이유는 약물 사용을 막기 위함입니다. 여기에는 여러 이유가 있는데, 사실 처음부터 금지되지는 않았습니다.
오늘은 정형외과 의사인 로이 밀스(Roy A. Meals)의 저서 『우리는 어떻게 움직이는가』를 바탕으로 경기력 향상 약물의 역사와 그 영향에 대한 궁금증을 해결해 보려고 합니다.
운동선수들이 경기력 향상을 위해 약물을 처음 사용하기 시작한 때는 기원전 3세기로 올림픽 선수들과 검투사들이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지금의 화학적으로 정제된 약물과는 결이 다른 브랜디(증류주)나 와인, 버섯, 참깨, 허브차 등이 사용됐는데, 당시 사람들은 이러한 식품을 섭취하면 긴장 및 통증 완화, 에너지 공급, 집중력 향상 등 신체적·정신적으로 도움이 되는 간접적인 효과를 경험적으로 활용하며 경기력을 끌어올리고자 했습니다.
이후 과학과 기술이 발전하면서 경기력 향상 약물에 대한 접근 방식이 점차 변하기 시작했고, 현대에서 문제 삼는 의미의 약물 사용도 19세기 후반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당시 프랑스의 의사이자 내분비학자 샤를 브라운-세카르(Charles Brown-Séquard)는 기니피그와 개의 고환에서 추출한 물질을 자신에게 주사해 활력을 회복하고자 했습니다. 복용 후 상태에 대한 그의 주장에 따르면 신체적인 힘이나 정신적인 능력, 식욕 등이 증가했다고 합니다.
이 물질은 브라운-세카르 묘약(Brown Séquard elixir)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지기 시작했고, 운동선수 중 피츠버그 앨러게니스(Pittsburgh Alleghenys, 현 피츠버그 파이리츠)에서 투수로 활약한 제임스 프랜시스 갤빈(James Francis Galvin)이 공개적으로 사용한 사례로 유명합니다.
그는 1889년 미국 메이저리그 베이스볼(Major League Baseball, MLB)에서 최다 승리, 최다 선봉 출전, 최다 완투, 최다 이닝 투구의 역사적인 기록을 세운 선수인데, 이런 활약상에 한 신문에서는 묘약의 효과를 입증한 가장 좋은 증거라고 보도하기도 했습니다.
참고로 당시 대중들은 운동선수의 약물 사용에 대해 지금처럼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분위기였는데, 1904년 올림픽 마라톤 경기에 출전한 토머스 힉스(Thomas J. Hicks)가 경기 중반부에 힘이 빠지자 그의 지지자들이 근육 수축을 일으켜 근육 피로에 활력을 주는 스트리크닌을 두 번 주사하고 브랜디와 날달걀을 마시게 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그는 금메달을 땄습니다.
이런 도핑 사례들이 생기면서 국제 아마추어 육상연맹은 1928년 사용을 금지하기도 했으나 강제성이 부족해 실질적인 효과를 거두지 못했습니다. 이후 약물 사용 문제는 1935년 남성호르몬으로 알려진 테스토스테론이 인공적으로 합성되기 시작하면서 더욱 급증하기 시작합니다.
테스토스테론을 복용하면 근육 성장이 촉진되고, 근력이 5~20% 증가하므로 특정 종목의 선수들에게 주요하게 작용했는데, 특히 사이클 경기에서 활발히 사용되어 경기 중 빈 주사기와 약물 포장지의 자취를 따라가면 선두 주자를 찾을 수 있다고 말할 정도였습니다.
그로부터 10년 후에는 투포환이나 투창, 원반던지기 등의 선수도 테스토스테론을 복용하기 시작했고, 전방위적으로 약물 사용이 늘어나면서 선수 건강에 대한 심각한 부작용과 스포츠의 공정성에 대한 논란이 확산됐습니다.
물론 도핑에 대한 문제 인식과 규제 움직임은 이전에도 이후에도 계속 있었는데, 1960년 로마 올림픽에서 사이클 선수가 경기 중 약물 사용으로 사망한 사건이 대중에게 널리 알려지면서 반도핑 정책의 큰 계기가 됐습니다.
그래서 1967년 국제올림픽위원회(IOC)에서는 의학의원회(Medical Commission)를 설립해 약물 사용을 막고자 했고, 1968년 그르노블 동계 올림픽에서 처음으로 검사가 이루어졌습니다. 다만, 검출 기술 부족과 규정 미비 등의 복합적인 문제로 별로 효과적이지는 않았습니다.
효과가 없음을 방증하는 내용으로 1970년대에 들어서 동독(German Democratic Republic) 선수들은 모두 명령에 따라 약물 사용을 했습니다. 일부 선수는 자신이 약물을 사용한다는 사실조차 몰랐을 정도로 국가 차원에서 도핑 프로그램이 통제적이고 조직적으로 운영됐는데, 사회주의 국가 체제의 우월성을 선전하기 위한 목적으로 국가에서 이 같은 일을 벌였던 겁니다.
이 문제는 1990년 독일 통일 이후 1993년이 돼서야 그 전모가 세상에 드러났고, 조사와 처벌이 이루어지면서 도핑 문제에 대한 국제적 인식이 더욱 강화됐습니다.
사실 이보다 앞서 도핑 문제에 경각심을 준 사건이 있습니다. 바로 1988년 서울 올림픽에서 캐나다의 단거리 달리기 선수 벤 존슨(Ben Johnson)이 스테로이드 계열 약물인 스타노졸롤(Stanozolol)을 사용한 것이 적발된 사건입니다.
이로 인해 벤 존슨은 올림픽 금메달을 박탈 당한 최초의 선수가 됐고, 이 사건은 도핑 검사 기술의 발전과 약물 검사를 강화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이후 본격적으로 경기력 향상 약물 사용을 막기 위해서 1999년 세계반도핑기구(World Anti-Doping Agency, WADA)가 설립됐고, 현재까지도 힘든 싸움을 벌여오고 있는데, 기구에서는 아래 세 가지 기준 중 두 가지를 충족시키면 불법 약물 사용으로 판단합니다.
이에 따라 금지된 약물은 세계반도핑기구 금지약물 리스트를 살펴보면 알 수 있고, 대부분은 힘을 강화시키는 직접적인 효과가 있는 테스토스테론과 성장호르몬을 조합해 만든 약물입니다.
보다시피 선수의 약물 사용은 스포츠의 공정성과 도핑 방지 시스템에 대한 신뢰를 훼손하며, 팬들이 스포츠를 통해 기대하는 순수한 경쟁의 가치를 위협합니다. 또한, 선수 개인의 선택으로 단순하게 끝나는 문제가 아니라 스포츠 정신과 다른 선수들의 노력을 퇴색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음을 인지할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궁금증이 해결되셨나요?
– 원고 : Mills, Roy. 우리는 어떻게 움직이는가: 근육의 해부학에서 피트니스까지 삶을 지탱하는 근육의 모든 것. 해나무,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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