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엔 책을 소리내어 읽었는데, 언제부터 조용히 읽게 됐을까?

소리를 입 밖으로 내어 읽는 방식을 낭독이라고 하고, 눈으로 조용히 읽는 방식을 묵독이라고 합니다. 상황에 따라 낭독과 묵독을 할 수 있는데, 현대인들은 일반적으로 다른 사람과 함께 있는 공간에서는 묵독이 기본 교양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옛 서당이나 서원에서는 학생들이 책을 읽을 때 문장의 흐름에 따라 저마다 몸을 흔들며 낭독하는 것이 전통적인 독서 풍경이었습니다. 여기서 주제의 의문이 생깁니다. 지금은 사람들이 있는 데서 낭독하면 우스꽝스럽게 여겨지는데, 책을 읽는 기본적인 방식이 언제 어떻게 묵독으로 변하게 된 걸까요?

1910년대까지만 해도 묵독은 도서관이나 학교 같은 공공장소에서조차 보기 힘든 낯선 방식이었습니다. 어느 정도로 낯선 방식이었냐면 ‘외국 대학에서는 수백 명이 모여 공부하는데도 책장 넘기는 소리밖에 들리지 않는다’라는 사실이 신기할 일로 소개될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이런 인식은 1910년대 이후 점차 변하기 시작합니다. 묵독이 급속히 확산한 데에는 여러 요인이 있지만, 강화도 조약 체결로 개항한 뒤 등장한 신식 학교와 이후 일제강점기에 이루어진 학교 교육이 많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됩니다.

근대 이전의 교육은 주요 경전을 중심으로 정해진 문장을 반복해서 읽으며 외우는 방식이었다면, 신식 학교의 교육은 국어, 영어, 수학 등 여러 과목을 동시에 학습하는 방식이었습니다.

교육 방식의 변화에 따라 독서 방식도 변하기 시작했고, 새로운 독서 방식이 자리 잡으면서 학교에서도 실내 정숙이 중요한 규율로 정착됐습니다. 이 과정에서 학생들은 자연스럽게 묵독에 익숙해졌고, 특히 1920년대 후반 도서관에서 묵독 규율이 확실히 정착하면서 오늘날과 같은 독서 풍경이 만들어지게 됐습니다.

그리고 이 시기에는 책을 만드는 기술이 더욱 발전하면서 책 종류와 부수가 획기적으로 늘어났는데, 대중 독자층의 문해력을 고려한 저렴한 도서가 다수 출간됐고, 독서가 지식 획득의 수단이자 취미 활동으로 자리 잡으면서 묵독이 정착할 수 있는 중요한 요인이 됐습니다.

덕분에 많은 사람이 책을 읽으면서 쉽게 다양한 정보를 접할 수 있게 됐고, 독서를 통해 실생활에 필요한 지식과 정보를 습득하는 문화가 형성됐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에서 보편적으로 알아야 할 지식에 대한 요구가 커졌고, 이는 상식이라는 개념의 형성에 중요한 밑거름이 됐습니다.

여러분에게 상식이란 무엇인가요? 사람마다 그 기준이 제각각인데, 사실 상식이라는 개념 자체는 처음부터 존재했던 것은 아닙니다. 상식의 필요성은 해외 유학생들에 의해서 1900년대부터 강조되기 시작했고, 조선에서 처음 상식이라는 개념을 자각하기 시작한 때는 1910년대 중후반입니다.

그리고 이 시기는 제1차 세계대전과 3.1운동 이후 일제의 문화통치가 시작되어 조선 사회에 지식 계급들이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이 확보되기도 했고, 학문이 전문적으로 분화하기 시작하던 때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학문의 전문화 과정에서 지식의 위계가 형성됐고, 전문 지식과 구분되는 사회 구성원이 기본적으로 알아야 할 실용적이고 보편적인 지식인 상식이라는 개념이 처음 등장하게 됩니다.

이후 상식 운동이라는 것이 등장했는데, 이 운동은 조선인들에게 실용적인 지식을 널리 퍼뜨려 실력을 키우고 사회를 혁신하며, 민족적 자긍심을 고취하려는 목표를 가졌고, 문화적 민족주의운동의 흐름 속에서 추진됐습니다.

특히 1920년대 초·중반에는 조선의 경제적 자립을 촉진하려는 물산장려운동과 고등교육 기회를 확대하려는 민립대학설립운동 같은 계몽 운동이 활발히 전개됐는데, 이러한 운동들은 상식의 중요성을 더욱 확산시키고, 대중에게 필요한 지식을 보급하려는 노력과 맞물려 진행됐습니다.

이런 관심에 힘입어 상식의 보급을 목표로 하는 연재물이 등장하기도 했으며, 경제·위생·의학·생활 상식 관련 등 실질적인 정보를 제공했습니다. 그러다 1920년대 후반 세계 대공황 시기에는 조선도 영향을 받으면서 경제 불황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졌고, 경제 상식에 대한 요구가 강해졌습니다.

또한, 이 시기에는 ‘OO 상식 사전’과 같이 ‘상식’이 붙은 서적들이 등장하기 시작하면서 그 시대의 상식의 기준이 됐습니다. 보다시피 상식은 당대의 상황과 맥락에 따라 변하고,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정리해보면 낭독에서 묵독으로의 변화 과정에서 교육 방식의 변화와 책 제작 기술의 발전이 맞물리며 독서 활동이 대중화되는 계기가 됐습니다.

이로 인해 많은 사람이 독서를 지식 획득의 수단이자 취미로 여기게 되었고, 대중에게 실용적이고 보편적인 지식을 전달하려는 노력이 상식이라는 개념의 형성으로 이어졌습니다. 궁금증이 해결되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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