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의 모자는 자신의 개성을 나타내기 위해 쓰거나 다양한 이유로 얼굴과 머리를 가리기 위해 씁니다. 그런데 이런 모자 착용을 문제 삼는 때가 있습니다.
대개 웃어른을 동반한 공식적인 모임 자리나 수업 중인 교실 등이 해당하는데, 모든 웃어른이나 스승이 실내 모자 착용을 예의 없는 행동이라고 지적하는 것은 아니어도 드물게 있습니다.
일단 대중의 생각은 어떠한지 유튜브 커뮤니티에서 설문을 진행해봤습니다. 약 16만6천 명이 참여해주었고, 이중 약 3만 명(약 18%)이 예의 없는 행동이라고 응답해주었습니다.
이는 플랫폼 이용자의 연령대가 비교적 높은 네이버 밴드에서도 비슷했는데, 설문에 참여한 582명 중 158명(약 27%)이 예의 없는 행동이라고 응답해주었습니다.
이외에도 해외에서 진행한 설문에 따르면 투표에 참여한 4,150명 중 1,659명(약 40%)이 예의 없는 행동이라고 응답했습니다. 다만, 위 설문들은 상황이나 장소 등이 구체적이지 않고, 응답자에 대한 세부 정보가 없기에 해당 설문만으로 유의미한 분석은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할 부분은 많은 사람이 실내 모자 착용 여부는 예의와 관련이 없다고 생각하나 상황과 장소에 따라 모자를 벗어야 할 필요성은 느끼고 있다는 겁니다.
무엇보다 실내에서 모자 쓰는 행동이 예의와 관련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고 하더라도 내가 앞으로 만날 사람이 예의 없는 행동이라고 생각할 가능성이 있으므로 주의할 필요는 있어 보입니다. 그런데 왜 이런 관습이 생긴 걸까요?
사실 조선시대 때만 하더라도 천민을 제외한 모든 남성은 실내외를 막론하고, 심지어 잠을 잘 때도 모자를 썼습니다. 이는 당시 조선을 방문한 외국인들의 기록을 살펴보면 알 수 있는데, 모자의 나라라고 불릴 정도로 선조들은 모자를 아주 가까이 했습니다.
당시 선조들은 모자 벗는 행동을 오히려 예의 없는 행동으로 여겨 절대 모자를 벗지 않았습니다. 얼마나 모자를 벗기 싫어했는지는 1896년 러시아의 마지막 황제인 니콜라이 2세의 대관식에 특사로 참여한 민영환의 일화를 보면 알 수 있는데, 조선 특사의 여행기를 다룬 책 <해천추범(海天秋帆)>에 아래와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러시아 궁정 예법에 따르면 대관식장 안에서는 모자를 벗어야 하나 이를 거부해 입장할 수 없었다는 겁니다. 이런 관습은 대한제국 수립 직전까지 이어진 것으로 보이고, 변화가 생긴 때는 서양 복식(=옷의 꾸밈새)이 조선에 도입되면서, 특히 대한제국 수립을 전후로 추정합니다.
변화를 잘 보여주는 내용은 1897년 3월 4일자 독립신문의 기사에서 확인할 수 있는데, 아관파천(1896년 고종과 왕세자가 러시아 공관으로 임시 피신한 사건) 1년 후인 1897년 2월 20일 고종은 러시아 공사관에서 경운궁으로 환궁하게 됩니다.
이때 배재학당 학도들은 왕이 대궐로 향하는 길에 서서 갓을 벗고 만세를 부르며 환대해주었습니다. 이는 서양 군주가 행차할 때의 관습을 모방한 행동으로 왕 앞에서 존경과 기쁨의 표시로 모자를 벗었다는 것으로 볼 수 있고, 이와 같은 행동은 어디에서나 모자를 썼던 모습과는 크게 다른 행동을 보인 것으로 변화가 생겼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부분입니다.
그리고 이후 고종 황제를 비롯한 고위관료를 촬영한 사진들을 살펴봐도 실내에서 동양식 복식을 입었으면 모자를 쓰고, 서양식 복식을 입었으면 모자를 벗는 등의 모습이 뚜렷하게 구분됩니다.
이와 같은 서양식 관습이 전 계층으로 확산된 때는 일제강점기 때로 추정하는데, 교복 문화가 도입됨에 따라 서양식 복식을 입는 문화가 보편화됐기 때문입니다. 이에 따라 실내에서 모자를 벗는 관습 또한 자연스럽게 정착됐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혹자는 일제의 잔재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다만, 이 부분 관련해서 서양식 복식을 따르는 것이고, 도입된 시기도 대한제국기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서양에서는 왜 실내 모자 착용이 예의가 아닐까요? 이와 관련해서 명확한 정답은 없으나 다양한 주장이 있습니다.
1. 서양에서는 모자가 신분과 지위를 나타내는 용도로 쓰였고, 모자를 벗는 행위에 존경의 마음이 있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2. 종교적인 이유도 있습니다. 고린도 전서 11장 7절을 보면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과 영광이므로 머리를 가리지 말아야 한다’는 구절이 있습니다. 이를 따른다는 의견이 있습니다. (구약성서에서는 머리를 가려야 한다고 나와 있어서 성당마다 차이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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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고 투고 : 서울대학교에서 국사학 교양강의를 하는 김한빛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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