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의 합궁은 어떻게 이루어졌을까?

원고의 내용은 1987년 김용숙 선생님이 집필한 ≪조선조 궁중풍속 연구≫에 수록된 내용을 참고했는데, 해당 도서는 조선 멸망 후 생존한 귀인(왕비나 빈은 아니나 왕의 승은 입은 여성)이나 궁녀 출신 인물의 증언 및 왕실 자료를 토대로 집필됐습니다. 따라서 지금부터 하는 이야기는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의 모습임을 알립니다.

왕은 군주국가에서 나라를 다스리는 최고 통치자로 궁궐의 모든 것이 왕의 소유입니다. 여기에는 여성도 포함됐고, 조선시대의 법전에 따르면 궁녀가 왕 이외의 남성과 간통할 경우 즉각 참형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궁녀는 언제든지 왕의 승은(임금의 총애(寵愛)를 받아 임금을 밤에 모심)을 입을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인데, 왕의 승은을 입은 궁녀는 승은상궁(=특별상궁)으로 칭하고, 일반 궁녀와 신분을 구분했습니다. 그리고 승은상궁이 왕의 자식을 낳으면 후궁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습니다.

더 나아가서 왕과 왕비 사이에서 아들이 태어나지 않을 경우 후궁의 아들 중 세자를 책봉해 왕위를 계승할 수도 있었습니다. 따라서 세자를 만들 수 있는 행위인 왕과의 합궁(合宮, 남녀가 성교함)은 특별한 의미를 지닐 수 밖에 없었습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합궁 후에는 많은 것이 변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합궁이 이루어지는 과정은 단순하지 않았고, 정해진 절차에 따라서 진행됐습니다.

본격적인 설명에 앞서 왕이 업무를 끝내고 침전으로 갈 때는 남성인 사관이 동행할 수 없었기에 왕이 침전에서 무엇을 했는지는 기록할 수 없었고, 이에 따라 실록에 기록된 내용도 없으므로 실제와 다를 수 있음을 알립니다.

보통 왕비와의 합궁은 왕비의 침전인 교태전(交泰殿)에서 이루어졌고, 후궁이나 궁녀와의 합궁은 왕이 처소로 직접 찾아가거나 왕이 일상을 보내며 침전으로도 사용하는 강녕전(康寧殿)에 불러들인 뒤 이루어졌다고 알려졌습니다.

합궁 절차에 큰 차이는 없는데, 왕비의 경우에는 큰방상궁(제조상궁)이 일진(日辰, 운세 등)을 살펴보고 길일을 택해서 합궁일을 정했습니다. 다만, 후궁이나 궁녀의 경우에는 합궁일을 어떻게 정했는지 기록이 없어서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조선의 마지막 왕인 순종의 경우 일주일에 2회 정도였다고 합니다.)

어쨌든 합궁일 당일 큰방상궁이 침전을 담당하는 견습 나인인 생각시에게 동온돌방에 이부자리를 깔아놓으라고 지시합니다. 보통 왕비는 서온돌방에 머무르는데, 합궁일에는 왕과 왕비가 동온돌방에서 만나게 됩니다(*음양설에 따르면 동온돌방은 양(陽)의 기운을 띠므로..). 이는 강녕전에서 후궁이나 궁녀와 합궁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해당 건물은 1917년 화재로 인해 소실된 이후 복원

이해를 돕기 위해 교태전의 평면도를 봐주길 바랍니다. 구체적으로 순서를 설명해보면 합궁을 하기 위해 왕이 동온돌방에 옵니다. 그러면 나이가 많은 지밀상궁(대령상궁, 대전(大殿)의 좌우에서 잠시도 떠나지 아니하고 임금을 모시던 상궁)이 서온돌방에서 대기 중인 왕비나 후궁 또는 궁녀를 동온돌방으로 인도합니다.

왕이 있는 동온돌방에 들여보내면 생각시 및 50대 이하의 궁녀들은 모두 침실에서 퇴거합니다. 모든 궁녀가 퇴거하는 것은 아니고, 60~70대의 나이든 상궁들은 동온돌방 바깥에 있는 방에 한 명씩 앉아서 숙직하는데, 동온돌방을 제외한 모든 방은 문을 열어 통할 수 있게 해놓습니다.

이는 상궁들이 서로가 서로를 감시하게 하여 문제를 일으키지 않도록 하고, 합방 중 암살 시도 등의 불상사가 발생하는 경우 최대한 빨리 파악하기 위해 숙직방을 터놓은 것으로 추정합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동온돌방에서 만난 뒤 합궁을 시작하기 전에 상궁 중 한 명이 다시 한 번 이부자리를 점검하고, 문을 닫고 나옵니다. 동온돌방과 상궁들의 숙직방 사이에는 문 하나만 존재했으므로 동온돌방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상궁들은 충분히 파악할 수 있었을 겁니다.

이와 관련해 합궁 중인 왕에게 상궁들이 합궁 순서나 방법 등을 지휘했다는 속설이 있는데, 이를 증빙할 수 있는 자료는 찾을 수 없었습니다. 각종 미디어 매체에서 극적 전개를 위해 각색한 내용으로 추정하고,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도 거사를 치르는 중에 상궁이 왕에게 말을 건다는 것은 매우 어려웠을 겁니다.

따라서 상궁들은 합궁 중 발생하는 문제에 대한 처리나 불상사 방지를 위해 대기하는 역할만 했을 것으로 여겨집니다. 궁금증이 해결되셨나요?

  • 원고 : 서울대학교 김한빛 국사학 교양강의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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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합궁(성생활)은 어떻게 이루어졌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