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을 주고 제품을 구매하면 영수증을 받을 수 있습니다. 챙기지 않는 사람이 많으나 가계부 작성이나 업무상 지출 증빙을 위해 챙기는 사람도 많습니다. 이때 영수증을 풀이나 투명테이프 등을 이용해 붙이는 식으로 많이 보관합니다.
그런데 영수증의 글자 위에 투명테이프를 붙인 상태로 보관하면 접착한 부분이 점차 흐려지면서 글자가 사라진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신가요? 이해를 돕기 위해 영수증에 사인을 남긴 뒤 사진을 찍었습니다. 그리고 투명테이프를 붙여준 다음에 하루이틀 간격으로 사진을 찍어서 변화를 한 달 정도 관찰했습니다.
그 결과 일주일 정도가 지났을 때 글자가 사라져서 알아보기 힘들었고, 이후에는 아예 아무 것도 없었던 것처럼 변했습니다. 개인적인 목적으로 영수증을 보관하는 경우라면 크게 문제될 것은 없으나 업무상 지출 증빙을 위해 보관하는 경우에는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왜 이런 현상이 발생하는 걸까요?
먼저 대부분 영수증은 감열지라는 특수 종이를 사용합니다. 감열지는 열을 가하면 발색하는 색소를 이용해 표면에 글씨가 발색하도록 하는 종이입니다. 이러한 성질을 이용한 감열지 프린터는 감열지에 정밀하게 열을 가해 원하는 글씨와 모양을 새길 수 있도록 해주는 장치이고, 대표적으로 영수증 프린터가 해당합니다.
감열지의 표면에는 류코 화합물(leuco compound)이라는 무색의 색소 환원물이 있고, 류코 색소를 산화하게 해 발색하도록 하는 현색제(페놀계 산성물질)가 수용성 접착제에 의해 분리된 상태로 코팅되어 있습니다.
이때의 감열지는 아무 것도 없는 흰색의 종이인데, 열을 가하면 수용성 접착제가 녹으면서 분리된 상태로 코팅되어 있던 류코 화합물과 현색제를 섞이게 합니다. 그리고 현색제가 류코 화합물을 산화시켜 색을 띠는 색소로 변하게 하여 발색합니다.
그렇다면 산화한 류코 화합물을 환원시키면 어떻게 될까요? 염기성인 물파스를 발색한 감열지에 문질러보면 무색의 류코 화합물로 환원시킬 수 있습니다.
산성과 염기성이 아닌 중성 용액인 에탄올을 뿌려보면 물파스를 바른 것처럼 발색한 감열지가 흰색 종이로 변하는데, 이때는 에탄올에 의해 수용성 접착제와 류코 화합물, 현색제가 모두 녹으면서 빠져나왔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주제의 의문인 감열지와 투명테이프가 접착한 부분에서는 왜 발색한 부분이 사라지는 걸까요?
투명테이프는 폴리프로필렌(PP)이라는 얇은 플라스틱 필름에 고분자 물질을 피마자유나 폴리이소부틸렌과 같은 유기용매에 녹여서 만든 점착제를 코팅해 만듭니다.
투명테이프를 접착하고자 하는 물체의 표면을 확대해서보면 실제로는 울퉁불퉁한 구조로 되어있는데, 점착제의 고분자 물질이 울퉁불퉁한 표면 사이로 파고들어 넓은 표면적에서 점착력을 발휘해 끈적끈적하게 붙을 수 있습니다.
이런 투명테이프를 영수증 위에 붙이면 투명테이프를 만들 때 사용한 점착제의 유기 용매가 류코 화합물을 포함한 감열지의 코팅부를 녹입니다. 열을 가하는 것처럼 녹인다는 것이 아니라 천천히 녹이므로 많은 사람이 테이프 때문에 변했다고 생각하지 못합니다.
참고로 감열지가 발색하여 나타난 글자는 시간이 지나면서 결합력이 약해져 점차 흐려집니다. 이외에도 생활 속에서 이를 촉진하는 여러 요인들이 있는데, 햇빛에 오래 노출됐을 때도 글자가 사라지는 현상을 보입니다.
왜냐하면, 햇빛 속의 자외선이 자외선을 흡수하기 쉬운 방향 고리 구조를 가진 류코 화합물 분자를 무색의 색소 환원물로 바꿔버리기 때문입니다. 또한, 습기에 오래 노출됐을 때도 현색제가 희석되면서 글자가 사라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다른 유기 용매를 사용한 접착제나 테이프, 유성 잉크, 산성지, 기름, 유기산 등 산성 혹은 염기성 물질, 유기 용매 기체를 발생시키는 폴리염화비닐(PVC), 폴리에틸렌(PE), 폴리프로필렌(PP), 폴리에스터(P) 소재의 폴더를 사용하거나 접촉하는 경우에도 글자가 사라질 수 있습니다.
따라서 오랫동안 영수증을 보관하기 위해서는 실물 영수증을 그대로 가지고 있기보다는 스캔 또는 복사해두는 것이 안전합니다. 궁금증이 해결되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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