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 남자가 머리카락을 모두 올린 다음에 정수리 위에서 틀어 감아 맨 머리 모양을 상투라고 합니다. 아주 먼 옛날 일반 남자의 머리 모양으로 상투를 짜는 방법이나 동곳을 삽입하는 양식 등은 동일하지 않아도 현대까지 전승됐고, 상투뿐만 아니라 머리칼을 한쪽에 모아놓은 스타일은 일본이나 중원, 인도 등 동아시아 전역에서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조선시대에 상투에 관해 자세히 설명한 글은 찾기 어려웠고, 일제강점기 때 설명한 글은 찾을 수 있었습니다. 글에 따르면 상투는 두루뭉수리상투, 북상투, 치마상투, 고추상투, 솔잎상투, 쌍상투(총각) 등 6가지 종류가 있다고 합니다.
이렇게 다양한 종류의 상투가 있을 정도로 당시 시대 상황에서는 상투를 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는데, 매우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그 이유는 상투가 효도를 상징하고, 어른을 증명하는 표시였기 때문입니다.
‘신체발부 수지부모(身體髮膚 受之父母)’라고 많이 들어봤을 겁니다. 부모에게 물려받은 몸을 소중히 여기는 것이 효도의 시작이라는 뜻을 가진 효경(孝經)에서 나오는 문장으로 머리카락도 신체로 여겨 소중히 했기에 상투가 효도의 상징이 됐습니다.
다만, 많은 현대인이 머리카락을 아예 자르지 않는 것이라고 오해하고 있는데, 소중히 다루라는 의미이고, 아예 건들지 말라는 의미는 아닙니다.
그리고 상투가 어른을 증명하는 이유는 결혼한 남자만 상투를 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조선시대에서는 어른과 아이의 구별을 엄격하게 하는 것이 삼강오륜의 예의 중 하나였고, 그 기준이 상투였습니다. 상투가 없으면 아무리 나이가 많아도 어린이 취급을 했고, 나이가 어려도 일찍 결혼해서 상투를 했으면 어른으로 대우했습니다.
만약 상투를 한 어린 남성과 상투를 하지 않은 나이 많은 남성이 싸웠다면 원인이 어린 남성에게 있다고 하더라도 예의를 어긴 죄로 나이 많은 남성을 처벌했을 정도로 중요시했습니다. 이처럼 당시 시대 상황에서 상투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녔기에 남자라면 누구든지 하는 것이 당연했습니다.
그런데 상투를 하고 싶어도 머리카락이 없으면 못 할 텐데, 그때는 어떻게 했을까요? 이 내용과 관련한 기록은 존재하지 않으나 상투의 의미와 종류, 하는 방법, 옛날 사람의 초상화 등을 살펴봤을 때 어떻게든 했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습니다.
앞서 살펴본 상투 종류 중에 고추상투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머리숱이 없는 사람이 상투를 크게 맬 수 없어서 한 상투로 비실거리는 상투라고 해도 어떻게든 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치마상투를 할 때 남의 머리카락을 이용했던 것을 감안해보면 머리숱이 적을 경우 다른 사람의 머리카락을 이용했을 가능성도 큽니다.
무엇보다 당시 초상화들을 살펴봤을 때 윗머리가 빈 상태에서도 뒷머리와 주변머리를 모아서 어떻게든 상투를 짰음을 알 수 있습니다.
참고로 상투를 짤 때는 머리카락이 너무 풍성해도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실제 상투를 짜보면 붕 뜨고 이상해보입니다. 이때는 배코치기라는 것을 한 다음에 상투를 짰을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배코치기는 정수리 부분의 머리카락 숱을 치는 것으로 현대에서는 이 부분이 와전되어 정수리 부분을 빡빡 미는 것처럼 알려졌습니다.
배코치기를 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사진 자료를 보면 정수리 부분에 바가지 같은 동그란 판을 씌웠음을 알 수 있는데, 화질이 워낙 좋지 않다 보니 마치 빡빡 깎는 것처럼 보여 오해가 생긴 듯 싶습니다.
빡빡 밀 이유도 없을뿐더러 어느 정도 숱만 쳐낸 뒤 그 위에 상투를 땋으면 붕 뜨지 않고 알맞은 모양으로 상투를 짤 수 있었기에 한 행위입니다. 궁금증이 해결되셨나요?
– 원고 투고 : 서울대학교 김한빛 국사학 교양강의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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