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의 킹덤을 봤을지 모르겠습니다. 이 드라마에서 굶주림을 견디다 못해 인육에 손을 대는 장면이 있는데, 실제로도 있을 법한 이야기라고 판단해 관련 내용을 알아봤습니다.
일반적으로 조선시대는 예의와 인륜을 중시한 유교사상이 사회 전반에 뿌리내린 때이기에 야만적인 풍습은 없었을 것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런데 아예 없는 일은 아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일반적인 상황에서 벌어진 일들은 아니고, 전쟁이나 기근 등으로 인해 식량을 구하기 어려워서 굶어 죽기 직전의 상황에 놓였을 때 인육을 먹는 일이 왕왕 벌어졌습니다. 이외에도 사람의 장기나 살이 질병에 효험이 있다는 속설을 믿고 일이 벌어진 사례도 있었습니다. 이러한 사례들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전쟁
오희문(吳希文)이라는 선비가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약 9년(선조 24년(1591)∼선조 34년(1601)) 간 쓴 일기인 쇄미록(瑣尾錄)에는 꽤나 충격적인 대목이 있습니다.
전쟁으로 인해 대부분 사람이 굶어 죽어서 걸인이 몹시 드물었다고 하고, 먼 곳은 가보지 못했어도 고을 근처만 가보더라도 굶어 죽은 자가 즐비했다고 합니다.
굶주림이 너무 심해 사람들이 서로 잡아먹는 일이 있었고, 사람이 혼자 지나가면 쫓아가서 잡아먹기도 했다고 합니다. 이 모습을 보며 사람의 씨가 다 없어지고 말 것이라고 일기에 남겼습니다.
다음으로 명나라에서 조선군을 훈련할 교관을 파견시키려고 조선에 제공할 양식, 그러니까 뇌물이 있는지를 물었습니다.
이에 국가의 정치 전반을 관장하는 회의기구인 비변사(備邊司)에서 전쟁으로 인해 사람이 사람을 잡아먹고 죽은 자가 태반이라며 거절의 내용을 담아 답변을 보냈습니다. 거절을 위해 과장이 섞여는 있겠으나 전쟁 중에 식인 사례가 있었음을 시사하는 대목입니다.
2. 기근(흉년으로 먹을 양식이 모자라 굶주림)
농사가 잘 안되어 어쩔 수 없이 굶는 때도 많습니다. 이와 관련해 대사헌(大司憲, 사헌부의 장관) 이계린(李季疄)이 황해도 관찰사로 있을 때 임금에게 “기근이 너무 심해 인육을 먹은 자도 있었다”고 보고한 적이 있습니다.
충격적인 보고를 받은 세종은 의정부(議政府)에 논의를 지시했고, 사실관계를 확인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런데 관련자들을 추궁해보니 다들 들은 바가 없다고 하며 소문의 출처를 정확히 제시하지 못했습니다. 이에 임금은 이계린을 국문(형장(刑杖)을 가하는 심문)하게 했고, 이를 피하고자 이계린은 구체적인 출처를 말했습니다.
그에 따르면 자신의 외삼촌이 이백강(李伯剛)의 하인인 김간으로부터 이야기를 들었다고 했고, 김간은 이계린의 친척인 조수명(曺守命)으로부터 들은 이야기라고 했습니다.
이들을 데려와 추궁하니 눈이 보이지 않는 여성이 너무 배고파서 죽은 아이의 시체를 먹는 것을 보았다며 자백했고, 세종은 사안이 심각하다고 판단해 수승문원사 강맹경을 황해도 해주로 파견하여 조사하도록 했습니다.
이외에도 전리 김의정(金義貞)이 황해도 서흥군 백곡리에서 사람들이 인육을 구워 먹은 사례를 구체적으로 확인한 사례를 보고해 마찬가지로 구체적인 사실을 확인하도록 지시했습니다.
그리고 조사를 위해 파견된 관리들은 인육을 먹었다는 보고가 모두 거짓이라고 보고했습니다. 이에 세종은 거짓 보고를 올린 자들을 처벌하도록 지시했는데, 동부승지(同副承旨, 조선시대 승정원에 속한 정3품 관직) 이계전(李季甸)이 원래 보고가 거짓이 아닐 수 있음을 주장했습니다.
아무래도 임금에게 보고하는 것인 만큼 인육을 먹은 해괴한 일을 차마 보고할 수 없어서 없는 일이라고 꾸몄을 수 있고, 이 사건을 거짓보고로 처벌하면 앞으로 유사한 사건이 발생해도 임금에게 사실대로 보고하는 사람이 없을 것이라고 강하게 주장했습니다.
세종은 이 주장이 타당하다고 여겨 형량을 감경하는 선에서 그쳤는데, 이를 보면 성군이라 불린 세종도 기근으로 인한 인육 문제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알 수 있습니다.
언급한 실록 외에 현종개수실록에도 인육을 먹은 내용이 있었고, 숙종실록에도 있었습니다. 이때는 조선사에서 손꼽히는 대기근인 을병대기근 때로 백성들이 몹시 굶주렸을 것으로 판단해 인육을 먹은 사람들에 대한 사형은 면하게 했다고 합니다.
3. 약효
사실 사람의 장기와 살이 특정 질병에 효험이 있다는 속설은 일부 현대인도 믿는 속설입니다. 옛날에는 더 쉽게 믿었을 텐데, 실록에 따르면 오랫동안 병을 앓던 부모를 위해 인육을 먹이면 낫는다는 속설을 믿고 자기 손가락을 잘라 구워 먹인 사례가 왕왕 있었습니다.
누군가에게 피해를 준 것이 아니고, 자식의 효행을 엿볼 수 있었기에 칭송하는 분위기였습니다. 그래서 충신·효자·열녀를 표창할 때 그들이 사는 마을 입구나 집 앞에 세워주는 붉은색의 문(정문, 旌門)을 임금이 세워주었고, 부역을 면제해주기도 했습니다.
물론 나쁜 사례도 있습니다. 사람의 고기나 간·쓸개가 매독을 치료하는 약으로 쓰인다고 해서 흉악한 무리들이 사람들을 유괴해 배를 가르고 이를 빼갔습니다.
치료의 목적을 떠나 돈을 벌기 위해 하는 사람도 있어서 산골짝에는 나무에 묶여 배가 갈린 자가 여럿 있었다고 합니다. 충격적인 소식에 선조는 법을 만들고, 현상금을 걸어 범인들을 체포하도록 했습니다.
현대인들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나 옛날에는 종종 있었던 일로 보입니다. “사흘 굶어서 남의 담 안 넘는 놈 없다”는 속담이 있듯이 굶주림이 극한에 치달으면 인간으로서 해서는 안 될 일을 저지르게 되는 것 같습니다. 궁금증이 해결되셨나요?
– 원고 : 서울대학교 국사학 교양강의 강사 김한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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