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교배로 탄생한 동물은 왜 종족 유지를 못할까?

현대의 생물 분류 체계는 역(域, Domain)-계(界, Kingdom)-문(門, Phylum/Division)-강(綱, Class)-목(目, Order)-과(科, Family)-족(族, Tribe)-속(屬, Genus)-종(種, Species)으로 이루어지고, 종은 가장 기본적인 생물 분류입니다.

이러한 종은 형태학적·계통발생학적·유전학적 등에 따라 개념이 다양한데, 생물학자인 에른스트 발터 마이어(Ernst Walter Mayr, 1904-2005)가 제안한 생물학적 종 개념으로 봤을 때 아래와 같은 조건을 만족하는 무리를 같은 종으로 정의합니다.

이때 자발적인 생식 활동을 하지 않으나 인공수정으로 생식 가능한 자손이 나오기도 하고, 자발적인 생식 활동을 해도 수정되지 않기도 합니다. 이들은 같은 종이 아니고, 이를 통해 자연 상태에서 특정 종은 다른 종과 유전적으로 격리된 상태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특이하게 이러한 방식으로도 종을 정하기가 어려운 경우가 있습니다. 고리종(ring species)이라고 하는데, 예를 들어 A와 B, B와 C 사이에서 나온 자손이 각각 생식능력이 있을 때 A와 B, B와 C는 각각 같은 종으로 분류되나 A와 C 사이에서 나온 자손이 생식능력이 없으면 자손은 다른 종으로 해석됩니다.

이와 반대로 이미 서로 다른 종으로 분류됐으나 이종교배 및 생식이 가능한 경우도 있습니다. 조건에서 벗어나는 특이 사례가 많은 이유는 종의 개념 자체가 인위적으로 정한 분류 기준이라서 그렇습니다.

어쨌든 이종교배로 태어난 동물은 종족을 유지할 수 없습니다. 관련 연구들이 있는데, 결론을 말하면 생식세포인 정자·난자를 만들 때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감수분열이라고 들어봤을 겁니다. 생식세포의 형성 과정에서 두 번의 연속적인 세포 분열로 2n개의 염색체를 갖는 1개의 모세포로부터 n개의 염색체를 갖는 4개의 딸세포를 형성하는 과정입니다.

이러한 감수분열이 되려면 유전자가 복제된 뒤 쌍으로 있는 염색체들이 서로 짝을 만나 나란히 정렬해야 합니다. 하지만 유전자가 다를 경우 염색체의 짝이 맞지 않고, 운 좋게 짝이 맞더라도 나란히 정렬할 가능성이 매우 낮으므로 생식세포 형성에 실패하기 쉽습니다.

예를 들어서 같은 말속(Equus)에 속하는 말(Equus ferus caballus)과 당나귀(Equus Africanus asinus)를 보면 말의 염색체는 64개(32쌍)이고, 당나귀는 62개(31쌍)입니다.

이 두 종은 약 200만 년 전 공동 조상으로부터 갈라져 각각 진화해왔고, 연구자들이 염색체 페인팅이라는 기법을 이용해 염색체가 서로 어떤 관계를 보이는지 알아본 결과 대부분 그대로 보존됐으나 염색체가 쪼개진 곳이 6곳, 합쳐진 곳이 10곳, 순서가 뒤집힌 곳이 최소 2곳으로 확인됐습니다.

결과적으로 두 종의 염색체 개수는 다르고, 이들의 이종교배 종인 노새(수나귀+암말)와 버새(암나귀+수말)는 63개의 염색체를 갖습니다. 그래서 생식세포를 만들고자 감수분열이 진행될 때 63개가 정확하게 반으로 나누어지기 어려우므로 문제가 생기고, 생식능력이 없어지게 됩니다.

이때 낮은 확률로 암컷에서는 생식세포가 형성될 수 있는데, 이는 영국의 유전학자 존 버든 샌더슨 홀데인(John Burdon Sanderson Haldane, 1892-1964)이 1922년에 제안한 ‘홀데인 규칙(Haldane’s rule)’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이 규칙은 “서로 다른 두 동물 종을 교배했을 때 태어난 자손 중 한쪽 성이 불임이거나 존재하지 않거나 드물다면 그 성은 이형 배우자성(heterogametic sex)이다.”입니다.

그러니까 포유류의 성염색체는 수컷이 XY, 암컷이 XX이므로 수컷의 성염색체가 이형 배우자성의 형태이고, 암컷은 동형 배우자성의 형태입니다. 이와 관련한 메커니즘은 “X염색체가 이종의 Y염색체를 방해한다” 등 의견이 분분합니다.

각설하고, 홀데인 규칙에 잘 들어맞는 사례는 같은 표범속(Panthera)에 속하는 사자(Panthera leo)와 호랑이(Panthera tigris)의 이종교배 종인 라이거(수사자+암호랑이)와 타이곤(암사자+수호랑이)으로 수컷에서는 완전 불임입니다.

반면에 이종교배 종 암컷에서는 드물게 출산하기도 하는데, 사자와 호랑이는 염색체 수가 둘 다 38개(19쌍)이므로 생식세포가 19개로 같으나 진화하면서 유전자 재배치가 여러 곳에서 일어납니다.

그래서 라이거나 타이곤은 감수분열 시 염색체가 제대로 짝을 찾는 경우가 드물었을 것이고, 이에 따라 일부 이종교배 종의 암컷 개체에서만 출산이 가능한 것으로 보입니다.

참고로 이종교배 종은 단순히 두 종의 중간 형태가 아닙니다. 그 예로 라이거(수사자+암호랑이)는 400kg이 넘지만 타이곤(암사자+수호랑이)은 200kg이 채 되지 않습니다.

암사자는 여러 수사자와 교미하므로 수사자의 생식세포에는 성장 촉진 유전자가 발현돼야 유리합니다. 반대로 암사자는 몸이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새끼를 많이 낳는 것이 좋으므로 모계에서 성장 억제 유전자가 발현돼야 유리합니다. 즉, 사자끼리 교배하면 두 유전자가 균형을 이루어 적당한 크기의 자손이 태어나 자랄 겁니다.

반면에 암호랑이는 수호랑이 한 마리와 교미하므로 유전적인 경쟁이 필요 없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수사자와 암호랑이가 교배하면 수사자의 성장 촉진 유전자 때문에 그 자손(라이거)은 덩치가 커지고, 수호랑이와 암사자가 교배하면 암사자의 성장 억제 유전자 때문에 그 자손은 덩치가 작아집니다.

이는 유전체 각인(Genomic imprinting) 현상에 의한 결과이고, 노새(수나귀+암말)와 버새(암나귀+수말)의 경우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종의 분류는 인위적이므로 완벽할 수 없습니다. 최근에는 다른 종으로 분류됐던 북극곰(Ursus maritimus)과 회색곰(Ursus arctos horribilis)이 빙하가 녹으며 자연에서 만나 생식 가능한 자손으로 그롤라곰(Grolar bear)과 피즐리(Pizzly bear)곰이 발견되고 있습니다.

같은 이유로 미국 북동부에서는 늑대(Canis lupus)와 코요태(Canis latrans)의 이종교배 종인 코이늑대(Coywolf)가 발견되고 있습니다. 이 두 종 모두 아직 미분류 상태이므로 북극곰과 회색곰, 늑대와 코요태가 같은 종으로 분류될지도 두고 볼 일입니다.

어쨌든 이종교배는 자연스러운 현상은 아닙니다. 이종교배 종의 대부분은 인간의 흥미를 위한 관상용으로 만들어지고 있는 편인데, 교배 과정에서 많은 개체가 죽기도 하고, 태어나도 선천적으로 문제가 많아 일찍 죽는 편입니다.

그리고 인간으로도 이종교배를 시도했던 역사가 있습니다. 러시아 출신 과학자인 일리야 이바노비치 이바노프(Илья Иванович Иванов, 1870-1932)는 인간과 침팬지의 이종교배를 시도했는데, 휴먼지(Humanzee)라 불렸던 이 프로젝트는 처음에 암컷 침팬지의 난자와 인간 남성의 정자와의 인공수정으로 시작됐습니다.

실패의 연속이었고, 나중에는 인간 여성과 유인원의 인공수정을 시도하고자 여성 지원자를 구하기도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참여자가 구해지지 않자 프랑스령 기니에 거주 중이던 아프리카 여성들에게 몰래 실험을 진행하려는 시도도 있었는데, 이 사실이 알려지며 엄청난 질타를 받았고, 소련의 정치적 변화 과정에서 과학자들이 숙청되던 시기에 이바노프도 실형을 받으며 마무리됐습니다.

호기심과 과학의 발전을 위해 필요한 연구도 있지만 늘 조심하고 경계할 필요가 있습니다. 궁금증이 해결되셨나요?

– 원고 : 수의사 신동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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