썸의 기준이 뭘까..? (논문으로 분석)

* 이 콘텐츠는 DBpia에서 제공하는 논문 [썸을 탄다는 것은 무엇인가?: 신조어 “썸타다” 의 적용조건 분석]을 바탕으로 제작됐습니다. (* DBpia로부터 예산 지원을 받았습니다.)

‘썸’은 ‘어떤 것, 무엇’ 등의 뜻을 지닌 영어 단어 ‘Something’에서 파생된 신조어이고. 여기에 ‘-타다’를 붙여서 ‘썸타다’ 등으로 많이 사용합니다.

썸이라는 용어의 등장 이전에도 썸이 의미하는 상태는 이미 존재했습니다. 다만, 해당 상태를 설명할 언어적인 필요가 증가하면서 용어로 탄생했을 텐데, 흥미로운 부분은 다른 언어권에서는 그 의미에 정확히 대응하는 용어를 찾기 어렵다는 겁니다.

언어에는 그 언어 공동체의 문화가 반영됩니다. 그래서 이를 두고 썸을 사회현상과 연결 지어 설명하기도 합니다.

어쨌든 썸탄다는 용어는 2010년 전후로 나타나서 현재도 정말 많이 사용되는데, 사귀는 사이는 아니나 발전 가능성이 큰 상태를 의미합니다. 참 미묘한 관계로 연인이나 부부처럼 상호협의를 거쳐 결정되는 관계가 아니기에 정의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또 여기에는 사귈 생각은 없으나 사귈 수도 있을 것처럼 여지를 주어 관계를 의도적으로 유지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어장관리라는 신조어로 표현되는 이 관계 때문에 더욱이나 구별에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 영상에서는 썸탄다는 기준이 무엇인지 철학적으로 분석한 이정규 성균관대 철학과 교수의 논문을 통해서 주제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썸의 기준이 성립되려면 어떤 조건들이 필요할까요? 이정규 교수는 논문에서 쌍조건문(↔)을 가진 명제를 제시한 뒤 단계적 분석을 통해 조건을 제한해가며 썸타는 기준을 최종적으로 정의하고자 했습니다.

그 방식은 이렇습니다. 일단 혼자서는 썸탈 수 없으므로 2명이 있어야 하고, 그 둘 사이에 무엇인가가 있어야 한다는 명제를 설정합니다.

이렇게 했을 때 둘 사이에 물컵과 같은 물리적인 무엇인가가 있어도 명제는 성립하므로 심리적인 어떤 관계로 범위를 제한합니다

여기에는 존경 등과 같은 심리적인 관계도 성립하므로 어떤 이성적인 감정으로 범위도 제한해보고, 이 명제도 부부나 연인들이 성립할 수 있으므로 ‘미묘한’이라는 단어를 추가해서 차이를 줍니다.

하지만 미묘한은 의미가 추상적이므로 정확한 분석이 아닙니다. 그래서 해당 단어는 일단 빼고, 다른 범위를 제한해가며 썸탄다의 기준을 정의해갑니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명제에 반론을 계속 제시했고, 최종적으로 위와 같이 정의했는데, 요약해보면 호감 조건, 불확실성 조건, 증거의 표출 방식 조건, 기대 조건, 언화행위 조건 등 다섯 가지 조건이 충족돼야 한다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이 최종 명제에 어장관리도 해당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렇다면 어장관리도 썸인 걸까요? 이정규 교수는 어장관리를 두 가지 유형으로 구분합니다.

첫 번째는 상대방에게 호감은 없으나 있는 것처럼 해석할 여지를 남기는 행동을 통해 그 관계에서 개인적인 이득을 취하는 유형이고, 두 번째는 상대방에게 호감은 있으나 연인으로 발전할 생각은 없는 유형입니다.

첫 번째 유형의 경우 명제에서 우항이 만족하지 않으므로 썸은 성립하지 않으나 두 번째 유형은 우항이 만족하므로 썸이 성립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썸타는 기준을 정의한다고 하더라도 “나랑 썸탈래?”와 같이 직접적으로 말을 하거나 허락의 과정을 통해 결정되는 관계가 아니기에 계속해서 논쟁이 있을 주제라고 생각됩니다.

이정규 교수도 해당 정의가 완전무결한 정의는 아니라고 단서를 붙이기도 했고, 관련해서 경희대학교 철학과의 최성호 교수가 이정규 교수의 논문에 반박하는 논문을 다음해에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최성호 교수는 이정규 교수가 ‘썸’을 상대방이 자신에게 이성적인 호감을 갖고 있는지에 대한 정보의 부족에서 발생하는 인식적 불확실성(Epistemic uncertainty)의 관점에서 접근한 것을 문제 삼았고, 대신에 썸에서의 불확실성은 개인의 내적 갈등과 의사 결정의 어려움에서 기인하는 의지적 불확정성(Volitional indecisiveness)에 더 가깝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니까 썸은 서로 호감은 있으나 관계의 발전을 불확실하게 느끼고, 자신이 그 관계에서 무엇을 원하며, 어떤 결정을 해야 할지 확신하지 못하는 내적 갈등의 상태라고 합니다.

해당 논문에 대해서는 이정규 교수가 그 다음해에 논문으로 재반박했는데, 철학이라는 것은 이렇게 서로 학문적 논의와 철학적 탐구를 거치며 더 올바른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이해하면 될 것 같습니다.

따라서 어떤 철학적 주장이든 항상 비판에 열려있고, 더 좋은 명제가 있으면 누구든 논쟁할 수 있습니다.

해당 논문에 대해서 더 자세히 읽어보고 싶으신 분들은 아래 링크를 확인해주세요. 궁금증이 해결되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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썸의 기준이 뭘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