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를 탄 승객 중에는 항상 의사가 있는 걸까?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비행기 안에서 환자가 발생했을 때 기내 방송(닥터콜)으로 의사를 찾는 장면이 종종 연출됩니다. 이런 장면을 보면서 비행기를 탄 승객 중에는 항상 의사가 있는 것인지 의문이 생겼습니다. 만약 승객 중에 의사가 없고, 비행기가 착륙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낭패이니 말입니다.

항공사 네 곳에 관련 내용을 문의해봤습니다. 항공사에서 같은 맥락의 답변들을 주었는데, 비행기 승객 중에 항상 의사가 있는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그리고 항공사에서는 특별한 사유 없이 탑승자의 직업이나 신상에 대한 정보수집을 별도로 진행하지 않으므로 의사가 탑승한다고 해도 알 수 없다고 합니다. 다만, 흥미롭게도 수백 명이 탑승한 비행기에는 의사가 1~2명 정도 꼭 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의사가 기내에서 닥터콜을 받았을 때 응해야 할까요? 이와 관련해서는 논쟁이 있습니다. 응하지 않았을 때 처벌받을 수 있다는 인식이 있기 때문인데, 이에 따른 근거는 ‘응급 의료에 관한 법률 제6조‘입니다.

해당 법률에 따르면 “업무 중에 응급 의료를 요청받거나 응급환자를 발견하면 즉시 응급 의료를 해야 하고, 정당한 사유 없이 이를 거부하거나 기피하지 못한다”고 규정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업무 중이 병원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는 법조계의 해석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이유를 다 떠나서 한국의 의사들은 닥터콜을 받았을 때 대부분 응하는 것으로 확인됩니다.

서울대학교병원 국제진료센터 임주원 교수가 2016년 의사 445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실제 닥터콜을 받아 본 경험이 있는 의사가 96명이 있었다고 합니다.

이중 73명이 닥터콜에 응했고, 나머지 의사는 다른 의사가 이미 처치하고 있어서 응하지 못했거나 진료과가 아니거나 음주 상태 등의 이유로 응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6명은 법률소송의 우려로 응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사실 의사 입장에서 닥터콜에 응했을 때 좋을 게 없습니다. 그래서일까요? 기내 응급상황이 발생했을 때 응할 것이라고 대답한 의사는 445명 중 274명(약 61.6%)뿐이었는데, 막상 실제 상황이 닥치면 대부분 응하겠으나 설문에서 61.6%라는 수치가 나온 이유는 처치 중 환자에게 문제가 발생했을 때 본인이 책임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와 관련해 선한 사마리안법(응급의료법 제5조의2)이라고 들어봤을 겁니다. 2008년에 도입된 이 법은 생명이 위급한 응급환자에게 응급의료 또는 응급처치를 제공하여 발생한 재산상 손해와 사상에 대하여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이 없는 경우 그 행위자는 민사책임과 상해에 대한 형사책임을 지지 아니하며 사망에 대한 형사책임은 감경해준다는 법입니다.

이 법에서 중요한 내용은 ‘중대한 과실이 없는 경우’와 ‘사망에 대한 형사책임은 감경해준다’는 부분입니다. 중대한 과실 여부의 기준이 명확하지 않고, 의료인은 전문가이므로 과실 여부가 일반인과 다르게 적용될 수 있기에 논쟁이 있습니다.

그리고 의료종사자와 관련해서는 선한 사마리안 법뿐만 아니라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 제63조에 따로 명시된 내용이 있습니다. 아래의 내용으로 법률을 따로 분리해놓은 것을 보면 의료진 입장에서는 의아할 겁니다.

무엇보다 환자가 사망했을 때 책임 면제가 아니라 감경을 해준다는 내용이 있어서 책임의 정도도 불분명 합니다. 보건복지부에서 이와 관련해 답변한 내용이 있는데, 답변을 보면 모호한 부분이 많기에 의사 입장에서 닥터콜에 응하는 것은 매우 부담스러운 일입니다.

그럼에도 대부분 응하고 있으나 기내에서 응급환자가 발생했을 때 의사가 있고 없고는 환자의 운이고, 의사가 닥터콜에 응할지 말지도 환자의 운입니다. 그리고 응한다고 했을 때 의사의 진료과도 환자의 운입니다. 여기서 다른 의문이 생길 겁니다. 만약 승객 중에 의사가 없으면 어떻게 될까요?

항공사에서는 승무원을 대상으로 간단한 응급조치를 숙지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정말 위급한 환자가 발생하는 경우라면 비상착륙하여 병원으로 이송할 수 있도록 조치하고 있습니다. 항공사 입장에서는 가장 효율적이고, 합리적인 프로세스입니다.

직업이 의사인 분들에게 닥터콜과 관련한 내용으로 몇 가지 질문을 드렸습니다. 성형외과 전문의 신상호 원장님과 익명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익명의 내과 전문의, 홍동의 선생님 등이 답변해주었습니다.

답변을 종합해서 이야기해보면 아무래도 의사 입장에서는 닥터콜에 응한다고 하더라도 방어적인 진료를 할 수 밖에 없다고 합니다. 가장 큰 문제로 꼽은 내용은 기내에 기본적인 의료 장비가 없다는 겁니다. 구비된 응급 키트들도 거의 쓸모가 없는 것들이라고 했고, 보조해주는 의료 인력 없이 기내라는 제약된 환경에서는 사실상 환자를 위해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다고 합니다. 궁금증이 해결되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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