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을 해봤거나 학습을 통해 얻은 정보를 저장하는 일을 기억이라고 합니다. 기억은 우리가 살아온 흔적이므로 매우 소중한데,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서 좋은 기억이든 나쁜 기억이든 어느 순간 잊고 삽니다.
그렇다고 완전히 잊는 것은 아닙니다. 촉발원인에 의해 기억이 떠오르기도 하고, 인상적인 사건에 대해서는 촉발원인 없이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근데 어렸을 때의 어느 순간부터는 전혀 기억이 나지 않을 겁니다.
여러 논문자료를 참고해보면 대개 3살 이전의 일들은 거의 기억을 못 하고, 4~7살의 일들은 드문드문 기억하는 것으로 관찰됐습니다. 다만, 4~7살의 기억은 매우 단편적이고, 부정확했습니다.
바우어(Patricia J. Bauer)와 라르키나(Marina Larkina) 교수가 진행한 연구에 따르면 4~7살의 아이들은 3살 이전의 일들을 어느 정도 기억하고 있었으나 해마다 해당 기억을 매우 빠른 속도로 잊어버렸다고 합니다.(※3살 때의 일을 기준으로 5.5살 아이는 80%, 7살 아이는 60%, 7.5살 아이는 40% 이하를 기억)
보통 시간이 흐르면 자연스럽게 기억을 잃긴 해도 불과 몇 년 사이에 기억을 잃는 것은 의아합니다. 전문가들은 이와 같은 현상을 유아(또는 아동기) 기억상실증(Infantile amnesia)이라고 명명했고, 해당 현상에 관해서 여러 연구를 진행했으나 아직 원인을 명확히 밝히진 못했습니다. 그래도 지금까지 알아낸 연구결과를 토대로 주제의 의문을 해결해보고자 합니다.
잘 생각해보면 해당 시기는 인간이 언어를 배우는 시기와 맞물립니다. 어느 정도 알아들을 수는 있어도 정상적인 의사소통은 불가하다는 것을 근거로 언어의 결핍이 유아 기억상실증의 원인이 아닐까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근데 이 가설은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언어 능력이 없는 동물에서도 유아 기억상실증이 관찰됐기 때문입니다.
증명 실험은 캐나다 토론토 어린이병원(Hospital for Sick Children in Toronto, Canada.)의 신경과학자 프랭크랜드(Paul W. Frankland)와 조슬린(Sheena A. Josselyn) 부부가 쥐를 통해서 진행했고, 플라스틱 우리와 금속 우리를 준비해서 금속 우리에는 미세한 전기를 흘려보냈습니다.
신경과학자 프랭크랜드와 조슬린 교수 부부는 신경 형성 과정에 주목했습니다. 기억은 뇌의 해마(Hippocampus)라는 부위에서 관장하는데, 뇌가 발달하면서 해마의 뉴런(신경세포)이 증식하고, 연결됩니다. 이 과정에서 기존의 기억들이 삭제되어 어렸을 때의 기억이 없어진다고 주장합니다.
이와 관련해 전기 충격의 공포를 기억하는 성인 쥐에게도 뉴런의 발생을 촉진하는 운동을 4~6주간 시행한 결과 금속 우리에 들어갔을 때 공포를 느끼지 않고, 편안한 상태를 유지하는 것을 관찰합니다. 즉, 잊어버렸다는 것으로 신경 형성 과정이 기억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새끼 쥐에게 약물이나 유전자 재조합을 통해서 뉴런 증식을 차단했는데, 놀랍게도 어릴 때의 기억을 더 오랫동안 유지했습니다. 더 나아가서 연구팀은 새로 생긴 뇌세포 DNA에 녹색 형광물질 단백질을 바이러스 형태로 주입해서 녹색 빛의 새로운 뇌세포가 기존 뇌세포의 연결 회로와 결합하는 것도 확인합니다.
이러한 결합이 기존의 기억을 잊게 하는 것으로 보고 있고, 드문드문 기억나는 이유는 단편적인 기억의 조각들이 복잡하게 섞여 있기 때문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단편적인 기억의 조각들이므로 왜곡될 수 있고, 부정확합니다. 궁금증이 해결되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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