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임금의 식사 시간은 어땠을까?

생명체는 생명 활동을 유지하기 위해 음식을 먹는데, 인간은 음식의 맛을 즐기기 위해 먹기도 합니다. 그래서 특별한 날에는 특별한 사람과 특별히 맛있는 음식을 먹는 편입니다.

여기서 주제의 의문이 생깁니다. 임금처럼 높은 지위를 지닌 특별한 사람의 식사 시간은 어땠을까요? 상상해보면 으리으리했을 것 같고, 일반적이지 않은 절차도 있었을 것 같습니다.

실제 임금이 먹는 밥상은 수라상(水刺床)이라고 해서 엄격한 규정에 따라 차려졌다고 합니다. 또한, 음식에 독이 들어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먼저 먹어보는 기미상궁도 존재해 서민들의 식사 때와는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참고로 임금의 구체적인 식사 내용을 다룬 기록은 거의 없고, 20세기까지 생존했던 고위급 상궁과의 인터뷰 기록이 담긴 ‘조선왕조 궁중음식’을 보면 수라상 배치도는 아래와 같습니다.

음식은 철에 따라 바뀌었겠으나 자료가 없어서 자세히 알 수는 없습니다. 다만, 화성행차 때의 실무 내용이 기록된 ‘원행을묘정리의궤’를 보면 임금은 하루에 총 네 끼를 먹었고, 아침과 저녁의 한상차림과 점심과 밤찬의 한상차림은 아래와 같다고 합니다.

궁궐에서 먹는 수라상의 양과 배치에는 차이가 있겠으나 임금의 구체적인 식사를 다룬 유일한 기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각설하고, 궁궐에서 먹는 수라상으로 다시 돌아와 보면 수라상은 총 세 개의 상이 들어갑니다. 이때 모든 그릇은 같은 문양과 재질이 사용됐는데, 추석부터 이듬해 단오까지는 은그릇을 사용하고, 단오부터 추석까지는 사기그릇을 사용합니다. 그리고 임금과 궁녀가 사용하는 숟가락은 독극물을 검출하기 위해 항상 은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보통 독으로 사용되는 건 비소이고, 은이 황과 만나면 변색되므로 비소의 황을 검출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수라상 중 대원반은 임금이 직접 식사하는 상으로 각종 음식이 놓여있습니다. 특이한 점은 은수저가 두 벌 올라가는데, 두 벌 모두 임금이 사용하는 수저로 식사를 마친 뒤 차수(오곡차)를 올릴 때 한 벌을 치웁니다.

소원반은 빈 그릇과 쟁반, 팥수라(팥을 넣은 잡곡밥), 곰탕, 식후에 마실 차수(오곡차)가 놓여있고, 기미를 보기 위해 음식을 담을 은그릇이 놓여있습니다. 소원반에도 수저가 두 벌 올라가는데, 은숟가락과 상아젓가락입니다. 이 수저들은 상궁들이 기미를 위해 음식을 덜 때 사용합니다.

책상반에는 장국 및 장, 참기름, 여분의 음식이 놓여있습니다. 적절한 때에 대원반에 올리고, 수저는 한 벌(은숟가락+상아젓가락)이 놓여있습니다. 이외에도 전골은 별도의 화로를 준비해 따뜻하게 데운 상태를 유지합니다.

상이 세 개인 만큼 수라상에는 세 명의 궁녀가 배치됩니다. 앞서 독극물을 검출하기 위해 은수저를 사용한다고 했는데, 이 방법 외에도 음식에 독이 들어있는지를 확인하고자 궁녀가 임금보다 먼저 음식을 조금씩 맛보는 절차가 있습니다.

이 일을 기미(氣味)라고 하고, 이 역할을 전담하는 사람을 기미상궁이라고 합니다. 왕후나 후궁 및 왕의 아이를 낳은 귀인을 제외하고, 실무를 맡은 상궁 중 가장 높은 지위의 상궁입니다. 상궁 중에서 최고로 높은 사람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기미를 본다는 것이 의아하지 않으신가요?

사실 기미를 보는 일은 귀한 음식을 먹을 기회였기에 의외로 인기가 좋아서 궁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은 나인들은 감히 기미를 볼 수도 없었다고 합니다.

오해하면 안 될 것은 인터뷰한 상궁이 생존한 시기인 19세기 말이나 20세기 때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고, 그 이전에는 어땠는지 알 수 있는 기록이 전혀 없습니다. 다만, 임금의 죽음과 관련해 독살설은 있으나 증명된 사례가 없는 것으로 봤을 때 크게 부담되는 일은 아니었을 것이고, 의례적으로 하는 관습 정도로 추측하고 있습니다.

어쨌든 기미를 담당하는 큰방상궁이 왕 바로 오른편에 앉고, 수라상궁이 왼편에 앉습니다. 그리고 멀찍이 생각시(어린 궁녀) 한 명이 있어서 음식을 먹기 좋게 자르고, 적절한 때에 대원반에 음식을 채워 넣는 역할을 합니다.

식사 순서로 보면 상이 다 차려진 다음 왕이 들어와서 대원반 앞에 정좌하면 수라상궁(중간급 상궁)이 음식을 담은 그릇 뚜껑을 두 손으로 차례로 벗겨 소원반에 둡니다.

그리고 상아젓가락을 이용해 은그릇에 음식을 조금씩 덜고, 임금이 보는 앞에서 궁녀들은 손으로 음식을 집어 먹어 기미를 봅니다.

손으로 음식을 집어 먹는 것이 이상할 수 있는데, 궁녀가 사용한 식기를 임금이 먹을 음식에 접촉되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로 추정되고, 먹은 음식에 문제가 없으면 큰방상궁이 “젓수십시오”라는 말을 올리고, 임금의 식사가 시작됩니다.

임금이 식사할 때는 다리 위에 휘건(고운 무명 수건)이 둘려있고, 식사하는 동안 전골을 뜨겁게 마련해서 빈 그릇에 덜어서 올립니다. 국까지 다 비우면 탕을 내리고 차수(오곡차-숭늉)를 올리는데, 이때 대원반의 수저 한 벌을 치웁니다.

임금이 식사를 마치면 수라상은 퇴선간(잔반을 처리하는 부서)으로 나가고, 남은 음식은 상궁들이 다음 끼니에 먹습니다. 임금의 식사는 이렇게 이루어졌습니다. 궁금증이 해결되셨나요?

– 원고 : 서울대학교 국사학 교양강의 강사 김한빛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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