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 회장의 변호사가 회장의 유언장을 발표 안 해도 될까?

드라마나 영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캐릭터가 재벌 회장입니다. 어마어마한 부를 바탕으로 권력을 행사하는 모습은 시청자의 흥미를 끌며 재미를 선사해주는데, 보통 이렇게 등장하는 재벌 회장 캐릭터는 노환, 지병, 혹은 외부 세력의 개입으로 일찍 죽음을 맞이하곤 합니다.

회장이 죽은 후에는 회장의 유산을 두고 상속인들이 갈등을 벌이기 시작하고, 갈등이 극에 달할 무렵 생전 재벌 회장의 개인 변호사가 타이밍 좋게 등장하여 회장의 유언장을 공개합니다.

이후 유언장 내용에 따라 희비가 엇갈리는 장면을 보여주면서 다음 상황으로 전개되는데, 유언장을 공개했을 때 상황이 불리해지는 상속인이 아주 무섭고 나쁜 사람이라면 변호사 입장에서 생명의 위협을 느낄 수도 있을 겁니다.

이때 유언장의 존재를 알고 있는 사람이 오직 변호사 본인뿐이라면 발표 안 해도 되지 않을까요? 살아생전 회장과 아주 돈독한 사이여서 어떻게든 약속을 지켜주기 위한 신념일까요?

일반적으로 유언이란 사람이 죽기 직전에 남기는 말로 통용됩니다. 죽기 전에 하는 말인 만큼 도의적인 차원에서 웬만하면 따라주려고 하는데, 법적인 절차 없이 남기는 말은 아무 효력이 없습니다.

유언이 법적 효력을 지니려면 법에 따라 일련의 절차를 거쳐야 합니다. 기본적으로 만 17세 이상의 의사능력이 있는 사람이어야 하고, 사회질서·강행법규에 위반하는 내용은 불가하며, 자필증서나 녹음, 공정증서, 비밀증서, 구수증서 방식만 효력이 있습니다.

유언은 방법이나 형식 등을 엄격히 지켜줘야 하는 편으로 이미 죽은 사람의 의사를 다시 물어볼 수가 없으므로 혼란을 피하기 위해서입니다. 만약 유언이 일정한 방법이나 형식을 지키지 않으면 효력이 전혀 없으므로 다시 기본으로 돌아가 법에서 정한 상속법에 따라서 재산이 상속됩니다.

각설하고, 법적 효력을 지닌 유언은 보통 자필증서나 공정증서로 많이 합니다. 자필증서는 말 그대로 자필로 유언장을 작성하는 것으로 유언 내용과 작성 날짜, 주소, 성명을 반드시 쓴 뒤 인감도장을 찍어야 합니다. 이 방법은 비용이 들지 않고, 별도 증인도 필요 없으며 사후에 발견되도록 하기만 하면 됩니다.

그리고 실제 유언을 집행할 때는 가정법원에서 유언장의 원본 여부를 검토하는 ‘검인’ 절차를 거쳐야 하는데, 상속인이 여럿일 경우 한 명이 무효라고 반발한다면 유언 무효 확인 소송을 제기하여 다툴 수 있습니다.

유언 집행은 소송이 다 끝나고 확정돼야 집행할 수 있으므로 자칫 시간이 오래 걸릴 수 있어서 보통은 유언 내용이 명확하고, 상속인들이 이의 없이 따를 것으로 예상될 때 쓰는 방법입니다. 다만, 여러 이유로 사후에 유언장이 공개되지 않으면 없는 채로 넘어갈 위험성도 있습니다.

공정증서는 변호사와 함께 국가에서 정한 형식에 맞게 유언을 작성하는 방법입니다. 공증 인가를 받은 공증 변호사하고만 작성할 수 있고, 공정한 제삼자인 변호사가 유언 작성 단계에서 유언자의 진정한 의사를 확인했으므로 사후 별도 검인 절차 없이 신속 집행이 가능합니다.

원본은 공증 변호사가 보관하고 있으므로 분실 위험성은 없으나 공정증서 가액에 따라 수수료가 최대 300만 원까지 발생할 수 있습니다.

나머지 유언 방법도 정해진 절차에 따라서 진행하면 되고, 다시 드라마 얘기로 돌아와서 보통 변호사들이 종이로 된 유언장을 읽는 모습을 봤을 때 자필증서 혹은 공정증서 형식의 유언장일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만약 유언장이 자필증서 형식으로 작성됐고, 변호사만 그 존재를 알고 있는 경우 변호사가 이를 공개하지 않으면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물론 그럴 일은 사실상 없겠으나 드라마 상황에 이입해서 유언장 내용대로 집행할 시 전혀 상속받지 못하는 법정 상속인이 이 사실을 알 때 유언장만 없애면 법정 상속분을 받을 수 있으니 어떻게든 없애거나 변호사가 발표하지 못하도록 해야 할 겁니다.

재벌 회장이라면 이런 일이 발생할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을 것이므로 공정증서 형태로 작성했을 가능성이 매우 큰데, 공정증서로 작성된 유언장은 원본이 공증 사무실에 보관되어 있으므로 훼손, 분실, 위조, 변조 등 조작의 여지가 거의 없고, 재산 규모가 아무리 커도 최대 300만 원의 수수료만 부담하면 되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공정증서로 작성된 유언장은 구조적으로 변호사가 개입해서 어떻게 할 수 없으므로 유언대로 일을 처리할 수밖에 없고, 상속인들도 이의를 제기하기 어렵습니다. 즉, 애초에 재벌 회장이었다면 이렇게 진행했을 것이기에 개인 변호사가 갑자기 나타나서 유언장을 발표할 때 반발하는 사람 없이 순응하는 겁니다.

또 최근에는 재산을 은행이나 증권사 등 금융기관에 맡기고, 사후에 재산을 어떤 방식으로 처리하라고 보수를 지급하여 의뢰하는 유언대용신탁 상품도 많이 이용되고 있는데, 이때는 제삼자인 금융기관도 유언장의 존재를 알고 있는 사항이므로 주제의 상황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궁금증이 해결되셨나요?

– 원고 : 법률사무소 온유의 이철규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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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에게 맡겨놓은 유언장은 100% 발표되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