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이 유람선을 탈 때 갈매기에게 주기 위한 새우깡을 따로 챙깁니다. 손에 새우깡을 들고 있으면 갈매기가 와서 새우깡을 먹는 게 하나의 정례 코스로 자리 잡았고, 그런 용도로 새우깡을 따로 판매하기도 합니다.
이 행위는 갈매기 생태에 좋지 않은 영향을 주므로 하지 말아야 하는데, 인간의 재미만을 위해 어떠한 제재 없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어쨌든 갈매기에게 매운 새우깡을 줬을 때 맵지 않을까 하는 궁금증이 생깁니다. 궁금증에 대한 답변부터 해보면 조류는 캡사이신 수용체의 구조가 포유류와는 달라서 매운맛에 둔감합니다. 단순한 결론으로 보이지만, 여기에는 꽤 흥미로운 내용이 있습니다.
매운맛을 내는 화학물질은 캡사이신입니다. 우리가 캡사이신을 먹으면 고온을 감지하는 온도 센서인 TRPV1이 활성화되면서 매운맛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 1997년 미국 샌프란시스코 캘리포니아대 세포·분자약학과 데이비드 줄리우스 교수팀이 TRPV1이 없는 생쥐를 만들어서 실험을 진행하고 저명한 자연과학 학술지 <네이처(Nature)>에 발표한 논문이 있습니다.
실험 방법은 물에 캡사이신을 타서 대조군 생쥐와 실험군 생쥐(TRPV1 없는)에 주고 관찰하는 것으로 대조군 생쥐는 캡사이신을 탄 물을 한 번 마신 뒤 다시는 마시지 않았고, 실험군 생쥐는 맹물을 마시듯이 계속 마셨습니다.
또한, 꼬리를 뜨거운 물에 넣었을 때 대조군 생쥐는 금방 꼬리를 뺐으나 실험군 생쥐는 한참 뒤에야 꼬리를 뺐습니다.
위 결과를 바탕으로 생쥐 유전체를 분석한 결과 TRPV1과 비슷한 유전자가 있는 것을 확인했고, 실험을 통해 TRPV1은 42℃ 이상일 때, TRPV2는 52℃ 이상일 때, TRPV3는 33℃ 이상일 때, TRPV4는 27~42℃에서 채널이 열린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42℃ 이상의 뜨거운 물에서 통증을 느끼듯이 캡사이신을 먹을 때도 TRPV1 채널이 열리면서 통증을 느낄 수 있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캡사이신은 왜 이런 작용을 보이는 걸까요?
캡사이신은 식물이 자신을 적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만든 화학물질입니다. 만약 매운맛을 내지 못한다면 누구나 섭취할 수 있으므로 종자 번식이 힘들어집니다. 특히 고추는 씨앗이 약해서 씹으면 쉽게 파괴되므로 대변으로 배출했을 때 번식할 수 없는 상태가 됩니다.
그래서 만든 물질이 캡사이신입니다. 인간을 포함한 포유류가 먹었을 때 매운맛이 나도록 해서 먹지 않도록 했고, 조류에게는 반응이 덜 이루어지도록 해서 조류를 번식의 수단으로 이용했습니다.
근데 이들의 번식 방법은 인류 때문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인류는 그냥 먹으면 매운 고추를 양념으로 활용하거나 희석해 먹는 방법을 찾았고, 아예 매운맛을 즐기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이들의 진화는 의미가 없어졌습니다.
그나마 인류는 인류가 먹기 위해 고추를 종자 번식시키므로 고추 입장에서는 종자 번식의 또 다른 전략을 찾은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궁금증이 해결되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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