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적을 쉽게 표현해보면 바다의 강도이고, 산적, 마적, 초적 등 지형에 따른 강도가 존재합니다. 그런데 해적, 그중에서 선장의 모습을 떠올려 보면 평범하지가 않습니다.
한쪽 팔에는 갈고리가 달려있기도 하고, 한쪽 다리에는 나무 막대기가 있기도 합니다. 이것도 아니면 한쪽 눈에 안대를 하고 있는 경우도 많은데, 바닷일이 험해서 생긴 부상 정도로 이해했을 겁니다.
이와 관련해 해적이라면 부상의 위험이 컸을 것이고, 부상이 아니더라도 감염병이나 전염병 또는 당뇨 등의 질환에 의해 눈에 문제(각막에 혼탁 또는 실명)가 생겼을 확률이 매우 높습니다.
문제가 생겼을 때 배 위의 환경인 만큼 치료가 어려웠을 것이고, 방치하다가 정말 미용의 목적으로 눈을 가렸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해적은 눈에 문제가 생기지 않았음에도 안대를 썼을 가능성이 큽니다.
이를 증명해줄 역사적인 자료는 존재하지 않지만, 한쪽 눈을 가리는 불편을 감수하고도 안대를 착용했을 여러 합리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살다 보면 어두운 곳에서 밝은 곳으로 이동하는 상황과 밝은 곳에서 어두운 곳으로 이동하는 상황을 자주 겪게 됩니다. 그때의 경험을 떠올려 보면 사람의 눈은 순간적으로 제 기능을 하지 못합니다. 먼저 그 이유부터 이해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밝은 곳에서 어두운 곳으로 이동한 직후에는 눈을 뜨고 있어도 사물을 제대로 구별할 수 없습니다. 시간이 지나 눈이 어둠에 적응해야 사물을 구별하기 시작하는데, 어두운 곳에서 사물을 구별하기 위해서는 비타민A로부터 생성된 레티날(retinal)과 ATP에너지를 활용해서 망막의 간상세포(=막대세포)에 존재하는, 붉은색의 빛을 감지하는 단백질 ‘로돕신(rhodopsin)’을 합성해줘야 합니다.
그런데 로돕신을 합성해놓고 어두운 곳에서 밝은 곳으로 이동하면 로돕신은 레티날과 옵신(Opsin, 로돕신을 구성하는 막단백질)으로 다시 분해됩니다. 참고로 어두운 곳에서 갑자기 밝은 곳으로 이동했을 때 순간 눈앞이 새하얗게 보이는 이유가 로돕신이 순간적으로 많이 분해되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밝은 곳에서 어두운 곳(암순응)으로 이동하거나 어두운 곳에서 밝은 곳(명순응)으로 이동할 때는 눈이 환경에 적응하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시간으로 보면 명순응은 몇 밀리세컨드(~ms, 1밀리세컨드 : 1000분의 1초)에서 몇 분 정도가 필요하고, 암순응은 약 40분 정도가 필요하다고 알려졌는데, 그 시간 동안 완전히 보이지 않는 것은 아니므로 일상에 불편을 겪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해적은 상황이 조금 다릅니다. 갑판 위와 아래를 수시로 드나들어야 하므로 명순응과 암순응이 반복 발생할 수 있습니다.
또한, 물기가 묻은 갑판 위에 반사된 햇빛은 상당히 강한 빛이라서 망막에 화상을 입힐 수도 있고, 갑판 위가 아니더라도 해수면에 산란되는 빛은 눈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는데, 청색광이라서 파장이 짧고 가지고 있는 에너지가 많기 때문입니다.
이외에도 갑판 위에 있다가 갑판 아래로 이동할 때 암순응이 발생하면서 순간적으로 이동에 제약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냥 이동하는 상황이라면 상관 없겠으나 전투 중이라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상황입니다.
따라서 여러 상황을 고려해 안대로 한쪽 눈을 가려 암순응에 미리 적응시켜놨다가 갑판 아래로 이동할 때 암순응에 적응한 눈을 이용했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참고로 야간비행을 하는 조종사도 해적과 같은 준비를 합니다. 비행 전 최소 30분 동안 밝은 빛(헤드라이트, 착륙등, 백색 섬광등, 플래시 라이트 등)을 보는 것을 피하며 암순응에 적응시켜두고, 조명을 사용해야 할 순간에는 한쪽 눈만 뜨기도 합니다.
그런데 앞서 어두운 곳에서 밝은 곳으로 이동하면 로돕신이 레티날과 옵신으로 분해된다고 했는데, 레티날은 ATP에너지를 활용해서 로돕신을 합성한다고도 했습니다. 그렇다면 이때 분해된 레티날을 재사용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이와 관련해 로돕신이 분해되어 만들어진 레티날은 구조가 변했으므로 재사용이 어렵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다만, 현재 정설로 통하는 내용은 망막색소상피세포(Retinal Pigment Epithelium cells, RPE cells)에서 일부 변환을 통해 재사용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궁금증이 해결되셨나요?
- 자문 : 안과전문의 전제휘님, 서울 강남 GS안과의 김무연 대표원장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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