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약 마셔도 안 죽은 사람은 어떻게 처리했을까?

사약(賜藥)은 전근대 사형 방식 중의 하나로 독살에 사용된 약물을 의미하는데, 정확한 의미는 임금이 내린 약물입니다. 그래서 실록을 보다 보면 많은 기사에서 병든 신하가 임금이 내린 사약을 받고 감사해하는 내용이 많습니다.

어쨌든 현대인이 드라마나 영화를 통해 주로 접하는 사약은 죽음의 약물입니다. 이와 관련해 그 시대에 사람을 죽이는 약물을 어떻게 제조했고, 굳이 독약을 만들어서 마시도록 하여 죽인 이유가 무엇인지 의문이 생깁니다.


사약을 어떻게 만들었을까?


당시 사약의 제조는 약을 만드는 기관인 내의원에서 담당했습니다. 안타깝게도 사약 제조와 관련한 기록은 전혀 없기에 그 성분은 알 수 없으나 마셨을 때의 반응을 기록한 내용으로 추측해볼 수는 있습니다.

사약을 먹으면 온몸에 열이 나서 죽었다고 합니다. 이를 바탕으로 아코니틴(aconitine)이라는 물질이 유력 후보로 추정되는데, 초오나 부자 등 미나리아재비과 식품의 뿌리에 들어 있는 알칼로이드로 성분으로 당시 약재로도 사용됐기에 쉽게 구할 수 있었습니다.

아코니틴이 인체에 대량으로 흡수되면 신경전달물질인 아세틸콜린의 분비를 억제해 신경과 근육을 마비시켜 사망에 이르게 합니다. 지금도 가끔 산에서 약초인줄 알고 초오나 부자를 먹다가 병원에 실려가는 사례가 종종 있습니다.

또 추정되는 후보 물질은 비상(砒霜)의 주성분인 비소(As)입니다. 이 물질 또한 다량 섭취 시 구토나 설사, 마비, 경련 등의 증상이 나타날 수 있고, 사망에 이르게 할 수도 있습니다.


왜 굳이 사약으로 죽였을까?


드라마나 영화에서는 사약을 마시고 얼마 안 있어 죽는 것처럼 연출하는데, 이는 연출상 허용으로 보통은 섭취 후 수십 분 이상이 지나야 죽음에 이른다고 하고, 마셔도 괜찮은 사람이 있었다고 합니다. 즉, 빠르고 깔끔한 사형 방법은 아니었던 것으로 보여서 의아합니다. 물리적으로 죽이는 것에 거부감을 가졌던 걸까요?

조선의 중심 종교는 중국에서 유래한 유교였기에 중국의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사형 방식도 그러한데, 중국에서는 고대부터 왕족과 고위 관료의 사형을 집행할 때 신체를 훼손하는 잔혹한 방법은 피했다고 합니다.

죽음 앞에서도 그들의 명예를 존중해주기 위함이었고, 이러한 중국의 선례를 따랐던 조선 역시 고위 관료에게 사형을 내릴 때는 반역죄를 제외하고 명예를 존중해주는 쪽으로 집행했습니다.


사약이 안 통하면 어떻게 했을까?


그런데 이 사약이라는 것이 당시에는 약물 보관 기술이나 성분 추출 기술이 그렇게 뛰어나지 않아서 품질이 천차만별이라 사약을 마시고도 죽지 않은 사례가 왕왕 있었다고 합니다.

지금부터 이야기하는 내용은 야담에 실린 것도 많아서 사실과 다를 수 있는데, 중종대에 좌의정까지 오른 권신인 김안로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가 권좌에 있을 때 사약을 받고 죽은 사람이 죽은 척을 하는 것인지 확인하기 위해 관솔에 불을 붙여 콧구멍에 집어넣었다고 합니다.

이런 그도 훗날 사약을 받게 됐는데, 사약을 마셔도 죽지 않아서 금부도사의 포졸들이 목을 졸라 죽였고, 그가 생전에 했던 것처럼 죽었는지 확인했다고 합니다.

이와 관련해 야담집 『어우야담』에 따르면 김안로가 사약을 마시고 입맛이 너무 써서 안주로 생밤을 찾았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이러한 정보들을 살펴봤을 때 사약의 맛은 매우 쓰고, 마셔서 죽지 않으면 목을 졸라서 죽인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 송시열도 사약 한 그릇에 죽지 않은 사람으로 유명합니다. 그의 사망 당시 모습이 상세히 기록된 문집에 따르면 그는 기력이 너무 쇠하여 거동이 매우 어려운 상태였다고 합니다.

보통 임금의 명령서를 받을 때는 의관을 정제하고 임금이 앞에 있는 것처럼 해야 했으나 몸 상태를 고려해 누워서 명령서를 받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사약을 세 그릇 마신 다음에 방안에 들어가서 제자 몸에 기대어 있다가 제자가 선생을 베개에 뉘일 것을 청해 누워서 죽음을 맞이하도록 했습니다.

곧 송시열은 입을 벌려 숨을 크게 세 번 내쉬고 사망했다고 하는데, 이 기록들을 통해 알 수 있는 정보는 최대한 고통스럽지 않게 편의를 많이 봐줬다는 것이고, 사약을 마시고 죽는 과정이 겉으로 봤을 때는 크게 고통스럽지 않았다는 겁니다.

끝으로 조선 중기의 문신인 임형수도 사약을 마셨을 때 잘 죽지 않았던 사람 중 하나인데, 을사전문록에 아래와 같은 내용이 적혀있었다고 합니다.

야사 성격의 글이라 완전히 믿을 수는 없어도 해당 내용을 통해 알 수 있는 정보는 사약을 술에 타서 마실 수 있다는 것과 사약으로 안 죽으면 역시 목을 졸라서 죽였다는 겁니다.

정리해보면 사약은 사형수를 존중해주는 목적으로 제공됐기에 높은 사람들만 받을 수 있었고, 집행 절차도 최대한 편의를 많이 봐주는 식으로 진행됐습니다. 그리고 사약의 맛은 쓰고, 품질이 제각각이라 마셔도 죽지 않은 경우가 왕왕 있어서 이때는 최대한 신체를 보존할 수 있는 교살형으로 형을 집행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궁금증이 해결되셨나요?

– 원고 : 서울대학교 국사학 교양강의 강사 김한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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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약 먹고도 멀쩡하면 어떻게 처리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