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적으로 부부 사이임을 인정받기 위해서는 혼인 신고를 해야 합니다. 혼인 신고 없이 그냥 같이 살면 동거라고 하는데, 종종 동거의 개념을 넘어 사실혼으로 부부 관계를 인정해주는 경우가 있습니다.
여기서 주제의 궁금증이 생깁니다. 만약 10년 정도의 오래된 사실혼 관계(A♡B)에 있던 사람 중 한 명(B)이 다른 사람(C)과 혼인 신고를 해서 법률혼 관계(B♡C)가 됐다면 누가 불륜을 저지른 걸까요? 법적으로 인정해주는 법률혼이 사실혼 보다 우선되지 않을까요?
먼저 사실혼의 개념에 대해서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법률에서는 사실혼을 정의하지 않았으나 대법원 판례에서 사실혼을 ‘당사자 사이의 주관적으로 혼인 의사가 있고, 객관적으로도 사회 관념상 가족 질서적인 면에서 부부 공동생활을 인정할 만한 혼인 생활의 실체가 있는 경우’로 판단하고는 있습니다.
즉, 우리나라는 법률혼 주의를 채택해 혼인 신고라는 형식적인 요건만 갖추면 법적인 부부로서 인정받을 수 있는데 반해 사실혼은 혼인 신고를 안 했으므로 모호합니다.
따라서 두 사람이 결혼할 의사가 있으며 다른 사람이 봐도 부부라고 알고 있어야 인정받을 수 있고, 만약 이러한 조건이 성립하지 않으면 같이 오래 살았다고 하더라도 단순 동거 관계일 뿐입니다.
그래서 일상생활에서 가장 쉽게 사실혼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방법은 결혼식을 올리고 같이 사는 겁니다. 결혼식을 했다는 것은 명확하게 혼인 의사가 있는 것이고, 하객들도 둘을 부부로 인식하기 때문에 확실한 방법입니다.
이는 대법원도 판례로 인정하고 있는 기준입니다. 이외에도 경제 생활을 함께 하는지, 서로의 가족 행사에 함께 참여하고, 가족으로서의 호칭을 사용하는지 등도 사실혼 판단의 중요 기준입니다.
그런데 참 이상하다 싶을 겁니다. 어렵지 않은 혼인 신고를 의도적으로 안 한 관계인데, 굳이 사실혼으로 인정해줄 필요가 있을까요?
만약 이를 인정해주지 않으면 실질적인 부부로서 살고 있음에도 관계가 파탄 났을 때 법적으로 보호받지 못해 피해자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법원에서는 사실혼 관계가 인정되면 관계가 끝나는 경우 재산 분할을 인정해주고 있고, 일방이 부당하게 관계를 파기할 때에도 위자료를 인정하는 등 어느 정도 실체적으로 형성된 부부로서의 관계를 인정해서 보호해주고 있습니다.
다만, 사실혼 관계가 인정돼도 사실혼 배우자가 사망했을 때 그에 따른 상속권은 발생하지 않습니다. 사실혼은 법원의 판단을 받아야 하는데, 사실혼 배우자에게도 상속권이 있으면 이를 판단 받는 동안 상속이 이루어질 수 없는 등 상속 관계가 복잡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사실혼 관계도 법적으로 어느 정도 보호를 해주므로 사실혼 관계(A♡B)를 유지하는 상황에서 사실혼 배우자(B)가 다른 사람(C)과 법률혼 관계(B♡C)를 맺는 경우 관계를 파탄 낸 것에 대한 위자료를 청구할 수 있고, 사실혼 기간의 기여도 등을 따져 (B에게) 재산 분할도 청구할 수 있습니다. 즉, 사실혼이 우선된 관계(A♡B)라면 뒤의 법률혼(B♡C)이 불륜을 저지른 것이 되는 셈입니다.
그런데 법률혼 상태(A♡B)에서 이혼하지 않고 오랜 기간 별거 상태로 지내다가 새롭게 다른 사람(C)과 가정을 이룬 뒤 사실혼 상태(B♡C)로 지내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 경우는 앞의 법률혼 관계가 이미 파탄에 이르렀는지에 따라 배우자(B)와 뒤의 사실혼 배우자(C)에게 법률혼 배우자(A)가 위자료를 청구할 수 있는데, 특이한 점은 뒤의 사실혼이 사실혼 요건을 갖추었다고 하더라도 중혼적 사실혼이라고 해서 판례에서는 이 관계를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한 사람이 동시에 두 명 이상과 결혼하는 것은 대부분 법체계에서 금지하고 있고, 혹여나 인정해주는 경우 재산 분할과 상속, 양육권 등에서 복잡한 법적 분쟁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법률혼 뒤에 발생한 사실혼은 관계가 끝나더라도 배우자에 대한 부당파기 위자료 청구나 재산 분할 청구를 할 수 없습니다.
여기까지 주제의 궁금증은 해결했고, 근본적인 궁금증이 생기는데, 왜 혼인 신고를 하지 않아서 사실혼이라는 이상한 관계를 유지하는 걸까요?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결혼식을 올리기는 해도 혼인 신고를 안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여기에는 여러 이유가 있겠으나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는 혼인 신고를 하지 않는 게 경제적으로 이득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당장에 부동산 쪽으로만 봐도 신혼부부 특별공급 자격조건은 갖추기 어려워서 의미가 없고, 주택청약은 부부 합산 1개만 적용되므로 따로 하는 것이 당첨에 유리합니다. 대출받을 때도 부부는 소득 기준을 합산하는데, 각자 대출을 받는 것이 더 유리합니다.
* 콘텐츠 제작 이후인 2025년 3월 25일부터 신혼부부와 출산 가구에 대한 청약 제도가 개편되어 중복 신청이 가능해지고, 맞벌이 가구 소득 기준이 상향된다고 합니다. 이외에도 가점 제도 개선 및 신생아 특별공급 신설 등이 개편된다고 하여 글에서 설명한 부부 패널티는 개선됐음을 알립니다.
또 각자 집을 소유한 상태에서 부부가 혼인 신고하면 그때부터 5년 뒤에는 다주택자로 인정받아 양도세가 중과되기도 합니다.
혼인 신고하지 않았을 때 상속권의 부재나 재산 분할의 제한, 유족 연금이나 건강보험 등 사회보장 혜택의 제한 등 불편이 발생할 수 있어도 신혼부부에게는 나중의 이야기라 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정부에서도 이에 대한 개선책을 마련하고자 하고, 신혼부부을 위한 정책을 계속 내놓고는 있으나 정말 좋은 혜택이라고 느껴지는 부분이 없다고 판단되면 혼인 신고를 하지 않는 사람들이 계속 많을 것으로 보입니다. 궁금증이 해결되셨나요?
– 원고 : 이철규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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