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 안에서 할 일을 하고 있다가 어떠한 목적이 생겨서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문을 열고 나가는 상황을 상상해보겠습니다. 보통은 그 목적을 달성하는 데 어려울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살다 보면 종종 문을 열고 나가는 순간 어떤 목적을 갖고 나왔는지 까먹는 상황을 경험하게 됩니다. 왜 이런 현상이 발생하는 걸까요?
심리학에서는 이 현상을 출입구 효과(Doorway Effect,) 또는 위치 갱신 효과(location-updating effect) 등으로 설명합니다. 이 현상은 특정 장소에 머물던 사람이 문을 통과해서 새로운 장소로 이동할 때 이전에 있던 장소보다 기억력이 감소하는 심리적 현상입니다.
이와 관련해 2006년 미국 노트르담 대학교(University of Notre Dame)의 심리학 교수 가브리엘 라드반스키(Gabriel Radvansky) 박사팀이 진행한 실험이 있습니다.
그들은 크고 작은 수십 개의 방으로 구성된 가상현실 환경을 만들고, 수십 명의 실험 참가자에게 가상공간을 탐색하면서 주어진 임무를 수행하도록 했습니다.
임무는 제시한 물건을 집어 들고 다른 방으로 이동한 뒤 그 물건을 내려놓고 다시 새 물건을 집어 드는 행동의 반복이었는데, 피실험자가 물건을 집어 들면 그 물건은 보이지 않는 가방에 담겨서 다시 확인할 수 없게끔 설정되어 있었습니다.
즉, 물건을 집어 들었으면 어떤 물건은 가방에 보관 중이고, 새로운 장소에서 어떤 물건을 집어야 하는지 피실험자들은 기억해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실험자들은 피실험자들이 문을 통과한 직후 가방에 어떤 물건이 들어있는지 물었고, 때때로는 새로운 물건을 집기 위해 내려놓은 물건이 무엇인지 묻기도 했습니다. 그 결과 피실험자들은 잘 기억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런데 이동하는 행위 자체가 기억에 영향을 줬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그래서 추가 실험을 진행했고, 문을 통과해 새로운 방으로 이동했을 때와 같은 거리를 문 통과 없이 움직이도록 해봤는데, 문을 통과했을 때가 유난히 응답이 느리고 부정확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2011년 후속 연구가 진행됐습니다. 세 개의 실험을 진행했는데, 첫 번째 실험은 2006년에 진행한 실험과 관련해 가상현실 환경을 더 작은 화면에 보여줘서 몰입감을 감소시키면 어떤 변화가 있는지 확인하는 실험이었고, 결과는 차이가 없었습니다.
두 번째 실험은 가상현실 환경이 아니라 실제 현실 환경에서 같은 실험을 해보는 것으로 이 또한 가상현실 환경에서 실험한 결과와 같았습니다.
마지막 세 번째 실험은 새로운 환경이 기억에 영향을 주는 요인이라면 다시 원래 장소로 돌아갔을 때 기억이 회복되는지였는데, 결과는 아니었습니다.
이러한 결과를 바탕으로 연구팀은 새로운 장소로 이동했을 때 결정이나 행동이 기억의 한 구획 속에 정리됨에 따라 위치 갱신 효과(location-updating effect)가 발생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현상은 단순히 문을 향해 걸어가는 상상만 해도 발생할 수 있다고 합니다.
2014년 미국의 녹스 대학교(Knox College)의 심리학자들이 진행한 실험으로 실제 환경과 가상 환경에서 실험을 진행했습니다.
실험은 51명의 학생을 두 그룹으로 나눈 다음에 첫 번째 그룹은 가구가 비치된 방에서 1분간 적응하는 시간을 보내도록 했고, 두 번째 그룹은 커튼을 쳐서 출입구를 만들고 영역을 분리한 방에서 돌아다니게 했습니다.
그리고 아래와 같은 추상적인 이미지를 보여주고 눈을 감게 한 뒤 피아노가 있는 방으로 이동하는 상상을 하면서 그 이미지를 기억하도록 요청했습니다.
두 번째 그룹은 이동하는 상상에 문을 통과하는 과정이 추가된 것인데, 두 그룹에 10개의 추상적인 이미지를 보여주면서 처음 보여준 이미지를 맞혀보라고 했을 때 가상현실 환경(Expreriment 2)이든 실제 현실 환경(Expreriment 1)이든 문을 통과하는 상상을 한 그룹의 정답률이 낮았습니다.
물론 지금까지 알아본 내용에 대해 부족함을 지적하는 주장도 존재합니다. 퀸즐랜드 대학교(University of Queensland)의 연구팀에서는 위치 갱신 효과가 그렇게 강력하게 발생한다면 집에서는 왜 현상 발생이 드문지 의문을 표했습니다.
그리고 직접 실험을 진행했는데, 그들은 29명의 피실험자에게 가상현실 환경에서 각 방의 책상 위에 있는 물건을 암기하도록 하고, 다른 장소의 책상으로 이동하도록 했습니다. 이때 이동해야 할 책상이 같은 방에 있기도 했고, 자동 미닫이문을 통해서 이동해야 하는 곳에 있기도 했었는데, 대부분 잘 기억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다음 실험에서는 45명의 피실험자에게 어려운 계산 작업을 병행하도록 했습니다. 그런데 이때는 잘 기억하지 못하는 모습이 관찰됐다고 합니다.
이를 통해 위치 갱신 효과는 작업기억(정보들을 일시적으로 보유하고, 각종 인지적 과정을 계획하고 순서 지으며 실제로 수행하는 작업장으로서의 기능을 수행하는 단기적 기억)에 과부하를 주는 상황에서 발생하는 현상이고, 단순히 문을 통과하는 행위만으로 설명하기에는 부족한 부분이 있다고 설명합니다.
그러니까 집중이 잘 안되는 상황, 예를 들어서 백화점에서 주차장으로 이동할 때나 거실에서 정원으로 나가는 등 큰 변화가 있을 때 발생한다고 보는 것이 더 적합하다는 겁니다. 궁금증이 해결되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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