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을 짓고 나서 시간이 지난 후 밥을 풀 때 밥솥 벽면에서 정체 모를 얇은 막을 본 적이 있을 겁니다. 이것의 정체는 무엇일까요?
결론부터 말해보면 쌀의 전분이 물에 녹은 후 증발하면서 만들어진 노화 전분입니다. 만들어진 원리를 알기 위해서 밥이 지어지는 원리부터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쌀에 있는 전분은 아밀로오스(Amylose)와 아밀로펙틴(Amylopectin) 분자로 구성됐습니다. 이 두 분자가 특정한 형태로 뭉친 것을 전분(녹말)이라고 하는데, 밥을 짓는 일은 열과 수분을 이용해 딱딱한 상태인 베타(β) 전분을 부드러운 상태인 알파(α) 전분으로 만드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과정을 호화(Gelatinization)라고 합니다. 호화 과정은 수화, 팽윤, 붕괴의 세 단계로 이루어졌는데, 규칙적으로 밀집해 딱딱한 상태인 베타 전분 입자 속으로 수분이 침투하는 단계를 수화(Hydration)라고 합니다.
이후 60℃ 이상의 열과 수분에 의해 베타 전분의 미셀(micelle) 구조가 커지는 단계를 팽윤(Swelling)이라고 하고, 팽윤에 의해 전분을 구성하던 미셀 구조가 너무 커지면서 파괴되는 단계를 붕괴(Disintegration of micelle)라고 합니다.
붕괴 단계에서는 아밀로오스가 점차 물에 녹아 나오는데, 이것이 고온의 밥솥에서 시간이 지나면 점차 수분을 잃으면서 딱딱해져 얇은 막이 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상태가 된 것을 노화 전분(Retrograded starch, β1-전분)이라고 합니다.
오해하면 안 될 것은 노화는 전체적으로 진행 중입니다. 다만, 노화 전분이 유독 밥솥의 벽면에서 많이 보이는 이유는 밥이 뭉쳐있을 때는 수분 유지가 비교적 용이하나 벽면에서는 그게 어렵기 때문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갓 지은 밥이 시간이 지난 밥보다 더 맛있는 겁니다.
그러면 노화 전분 상태인 찬밥을 다시 알파 전분으로 바꿔주면 갓 지은 밥처럼 될까요? 일단 한 번 호화된 전분은 열과 수분을 제거한다고 해도 처음의 베타 전분으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미 파괴된 구조는 열과 수분 흡수에 유리해서 열과 수분을 조금만 가해줘도 다시 쉽게 재호화되어 알파 전분이 될 수는 있습니다.
찬밥을 맛있게 먹으려면 중탕해야 하는 이유가 이런 원리이고, 삼각김밥을 먹을 때 전자레인지에 돌리지 않으면 딱딱한 식감이나 전자레인지에 돌리면 말랑말랑해지는 이유도 이런 원리입니다. 그리고 라면 국물에 찬밥이 맛있는 이유도 노화 전분이 국물을 더 쉽게 흡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 이런 원리를 활용해 한 번 호화시킨 뒤 의도적인 건조를 통해 노화시켜 저장성을 늘리기도 합니다. 처음에는 딱딱하나 뜨거운 물에 불려주면 부드러워지는 식품인 누룽지나 쌀국수, 당면, 라이스페이퍼 등이 그렇게 만들어진 식품입니다.
이외에도 알파 전분이 뜨거운 상태에서 수분 대부분을 급속 제거하면 노화 속도를 늦출 수 있고, 이런 원리를 활용해 만든 식품에 비스킷과 쿠키가 있습니다. 궁금증이 해결되셨나요?
-원고 투고 : 캘리포니아 대학교 – 산타바바라 캠퍼스 화학공학 박사과정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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