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2월 6일 유튜브 채널 ‘긱블’에 한 영상이 올라왔습니다. 영상은 285Hz(*Hz : 초당 진동 횟수)로 진동하는 수면 위에 물방울을 떨어뜨렸을 때 물방울이 합쳐지지 않는다는 내용이었는데, 막바지에 사물궁이 채널이 언급됐고, 주제의 원리를 설명하는 영상을 제작해달라는 요청이 있었습니다.
원고는 금방 준비했으나 미루다가 이제서야 다루게 됐고, 해당 주제는 유체역학을 전공하신 송현수 작가님의 도움을 받아 제작됐습니다. 많이 늦어서 죄송하고, 한 번 알아보겠습니다.
일반적으로 잔잔한 수면 위에 물방울을 떨어뜨리면 순식간에 합쳐지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합쳐지는 장면을 초고속 카메라로 확인해 보면 완전히 합쳐지기까지 0.1~0.2초 정도가 소요됩니다.
떨어지는 물방울의 낙하 속도로 인해 공기가 순간적으로 압축되면서 수면에 충돌 직전 만들어진 수백 nm에서 수 μm의 공기층(air film)이 사라지는데 걸리는 시간이고, 물방울의 크기 등의 조건에 따라서 시간 차이가 존재합니다.
이 내용을 이해하려면 물방울의 크기와 중력, 표면장력 간의 관계, 공기층의 형성 조건 등을 이해해야 합니다.
물체의 중력은 질량 × 중력 가속도이고, 질량은 부피에, 부피는 길이의 세제곱에 비례합니다. 그리고 액체의 표면이 가능한 최소 면적을 가지려는 성질인 표면장력은 액체 표면의 경계를 따라 작용하며, 경계의 길이에 비례하는 힘입니다.
따라서 물방울의 크기에 따라 중력은 반지름의 세제곱에 비례하여 증가하는 반면 표면장력은 반지름에 비례하여 증가하므로 물방울이 클수록 표면장력보다 중력의 영향을 많이 받고, 작을수록 중력보다 표면장력의 영향을 많이 받아 구 모양을 유지하려는 성질이 강합니다.
수면 위에서 물방울 형태를 오랫동안 유지하기 위해서는 구 모양을 유지하려는 성질이 강하고, 공기층이 형성된 후 오랫동안 유지돼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물방울의 크기와 떨어뜨리는 높이가 중요합니다.
물방울 크기가 크면 구 모양을 유지하려는 성질이 약하고, 질량이 커짐에 따라 충격량도 커져서 공기층 유지가 어렵습니다. 그리고 낮은 곳에서 떨어뜨릴 때는 낙하 속도가 느려서 공기가 압축되기 힘드므로 공기층 형성이 어렵고, 높은 곳에서 떨어뜨리면 낙하 속도가 빨라서 공기층 형성은 잘 되나 충격량이 커서 쉽게 뚫립니다.
따라서 공기층이 형성된 후 상대적으로 오래 존재하면서 에어 쿠션 역할을 하여 반발력을 주기 위해서는 적당한 높이에서 크기가 작은 물방울을 떨어뜨려야 합니다.
그렇다면 물방울이 구 형태를 계속 유지하고, 공기층도 사라지지 않는다면 수면 위에 물방울을 계속 유지할 수 있지 않을까요?
긱블에서 해당 실험을 진행한 것이고, 가능합니다. 이때 공기층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진동수는 액체의 점도나 물방울의 크기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는데, 진행한 실험에서는 일반적인 물을 사용했고, 진동수도 285Hz(*1초에 285번 진동한다는 의미)로 제시됐기에 실험 자체는 어려울 것이 없었습니다.
원리를 살펴보면 285Hz의 진동에서는 빠른 진동에 의해 공기가 지속적으로 압축되어 수면 위로 안정적인 공기층을 형성합니다. 이후 낮은 높이에서 물방울을 떨어뜨리면 공기층이 에어 쿠션 역할을 하면서 물방울을 계속 위로 튕겨 올려주어 수면과 합쳐지지 않도록 해줍니다.
다만, 실제 실험에서는 수면 위 물방울이 오랫동안 유지되지 못했는데, 여러 복합적인 요인에 의해 힘의 균형이 깨지면서 공기층의 두께가 0.2μm 이하가 됐고, 분자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인력인 반데르발스 힘에 의해 물방울과 수면의 물 분자가 서로를 잡아당기면서 공기층을 뚫고 합쳐졌기 때문입니다.
관련해서 물방울을 오랫동안 유지하기 위해서는 수면의 진동수를 조절하거나 액체의 점도를 높은 것으로 바꾸거나 수면과 물방울의 온도 차이를 주는 등 여러 방법을 동원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점도가 높은 오일로 실험하면 증발이 거의 일어나지 않아 오일 방울이 최대 3일 동안 유지될 수도 있습니다. 이를 실험한 논문을 보면 실험 조건의 오일 점도와 방울 직경, 진동수는 아래와 같았고, 최대 3일간 유지됐다고 합니다.
그런데 오일도 종류에 따라 점도 차이가 매우 큽니다. 일반적으로 점도가 낮으면 직경은 작고, 진동수는 커져야 오일 방울을 오랫동안 유지할 수 있는데, 실험에서 사용된 오일보다 25배 점도가 높은 오일로 실험해보면 오일 방울 직경과 진동수는 아래와 같이 조정해야 오일 방울이 유지됩니다.
같은 맥락에서 물의 점도는 두 번째 오일보다 500배 정도 점도가 낮으므로 방울의 직경은 작아야 하고, 진동수는 커져야 수면 위 물방울이 오랫동안 유지될 것으로 예측됩니다.
또 수면과 물방울에 온도 차이를 주라고 했는데, 뜨겁게 달궈진 프라이팬에 물을 조금 부어보면 물방울이 퍼지지 않고 동그르르 굴러다니는 것을 본 적이 있지 않으신가요?
라이덴프로스트 효과(Leidenfrost effect)라고 하는 이 현상은 고온에서 물방울의 일부가 증발하면서 수증기막을 형성해 완충 역할을 하여 물방울 모양을 유지하도록 도와줍니다.
비슷한 원리로 떨어뜨릴 물방울이 차갑고, 진동하는 수면의 온도가 뜨거우면 물방울 주변 공기의 대류 현상으로 공기층이 더 오래 유지되므로 물방울과 수면이 합쳐지기까지 더 오래 걸리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걸 알아서 무엇에 활용할 수 있을까요? 대표적으로 음파를 이용해 물방울을 공중 부양시킨 뒤 합치는 등 미세 액체의 제어와 이송을 하는 음향 미세유체역학(acoustic microfluidics)에 응용할 수 있고, 공기층으로 물과 선박 사이의 간격을 확보하여 마찰 저항을 줄이는 공기윤활 시스템에도 응용할 수 있습니다.
이외에도 물이 아닌 고체 표면에 수십 kHz의 진동을 주면 물방울이나 가벼운 고체를 공중에 띄울 수도 있는데, 정확히 같은 원리는 아니나 음향 공중부양(acoustic levitation) 또는 초음파 공중부양(ultrasonic levitation)이라고 하여 다양한 곳에 응용할 수 있습니다. 궁금증이 해결되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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