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잠들기 직전 기억은 없을까?

사람은 보통 하루에 한 번 평균 7시간 정도 잠을 잡니다. 잠은 피로가 누적된 뇌를 회복시키는 생리적인 의식상실 상태이고, 새로운 장기기억의 형성에도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런데 이런 잠을 잘 때 언제 잠든 건지 기억하시나요? 잠자기 직전에 눈을 감고 아무 생각을 하지 않으므로 딱히 기억할 것이 없어서 하는 말이 아니라 마치 기절한 것처럼 아무 기억이 없어서 의문이 생깁니다.

결론부터 말해보면 잠드는 순간을 기억하는 일은 불가능합니다. 먼저 잠이 어떻게 시작되는지부터 알아보면 뇌의 중심부(시상하부)에 있는 복외측시각교차전핵(VLPO, ventrolateral preoptic nucleus)이라고 하는 수면촉진신경핵이 활성화되면서 시작됩니다.

이 신경핵은 각성을 유지해주는 신경 시스템을 직접 억제하고, 각성을 유지해주는 여러 신경전달물질(아세틸콜린, 아드레날린 등)의 농도를 감소시켜줍니다. 그러면 각성이 낮아지면서 감각이 차단되고, 행동이 멈추면서 잠이 오기 시작합니다.

이때의 수면 단계를 비렘수면 1단계라고 하는데, 비렘수면의 단계가 높아질수록 깊은 수면이고, 잠자는 동안 하나의 단계가 지속되는 것이 아니라 빠른 안구 운동이 일어나는 렘수면(REM)과 렘수면이 아닌 3단계 또는 4단계로 구성된 비렘수면(NREM)을 반복합니다.

위 사이클이 한 사이클이고, 90분 정도 걸립니다. 그러므로 7~8시간 정도 잠을 자는 동안 4~5번 정도 수면 사이클을 반복한다고 보면 됩니다.

어쨌든 비렘수면 1단계가 시작되는 순간은 뇌파를 보면서 정확히 측정할 수 있습니다. 깨어있을 때는 뇌파가 빠르게 자글거리는데, 잠든 직후에는 뇌파가 평탄해지면서 느려지고, 알파파와 세타파가 증가하며 뇌의 활동이 여러 뇌 부위에 걸쳐 동기화됩니다.

여기까지 이해했다면 잠과 기억의 관계를 연구하기 위해 하버드 의대의 제임스 와이엇(James K. Wyatt) 연구팀에서 진행한 실험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연구팀은 피실험자들을 (불을 끈) 실험실에 눕혀 놓고 단어를 들려주면서 재웠습니다.

그리고 피실험자가 잠들어서 1단계 비렘수면에 돌입하면 30초 또는 10분이 지난 후에 깨운 뒤 단어를 어디까지 기억할 수 있는지 확인했습니다. 결과를 보면 30초만 잠든 경우 잠들기 직전의 단어를 꽤 높은 확률로 기억했는데, 10분 동안 잠든 경우에는 잠들기 4분 전에 들은 단어들부터 기억하지 못했습니다.

30초만 잠들 때는 잠들기 직전의 단어를 기억하고, 10분을 잠들면 잠들기 4분 전의 단어를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이 이상하지 않으신가요? 학자들은 이 현상을 특수한 종류의 기억상실증이라고 해석했습니다.

일반적으로 기억상실증은 특정 사건 이후의 일들을 기억하지 못하는 선행성 기억상실증(anterograde amnesia)과 특정 사건 이전의 일들을 기억하지 못하는 후행성 기억상실증(retrograde amnesia)으로 나뉩니다.

그런데 잠든 경우에는 수면 시작 전후 모두에 대해 기억상실이 혼합되어 나타났고, 와이엇 교수는 이 현상을 양방향성 기억상실증(mesograde amnesia)으로 명명했습니다.

기억은 경험을 단기기억(작업기억이라고도 함)으로 변환하는 부호화(encoding) 과정과 단기기억을 장기기억으로 저장하는 공고화(consolidation) 과정, 장기기억을 꺼내는 인출(retrieval) 과정의 총 세 단계의 과정으로 나뉩니다.

이와 관련해 잠자면 감각이 차단되어 부호화 과정이 일어나지 않으므로 잠들고 난 다음에 일어난 일들은 기억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자는 동안에는 공고화 과정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30초 동안 잠들었다가 깼을 때는 잠들기 전의 경험이 단기기억에 다소 남아있어서 떠올릴 수 있었지만, 잠이 10분 이상 지속되면 잠들기 전의 단기기억이 장기기억으로 전환되기 전에 사라져서 떠올리지 못합니다. 이런 이유로 잠들기 직전에 대한 기억은 할 수 없습니다.

참고로 잠든 직후에 우리가 아무것도 경험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잠이 시작된 직후 비렘수면 1단계에서 우리는 여러 가지 생생한 시각적 이미지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이를 입면 환각(hypnagogic hallucination)이라고 부르고, 주로 선잠 상태에서 꾸는 여러 가지 꿈이 바로 이 상태입니다.

입면 환각은 깨어 있는 상태와 꿈의 경계선상에 있는 독특한 의식 상태로 시각적 환각뿐만 아니라 청각, 촉각 등 다른 감각도 나타난다고 합니다. 잠든 직후에 깨우면 어떤 입면 환각을 경험했는지 알 수 있다고 하니 나중에 친구들과 실험해보길 바랍니다. 궁금증이 해결되셨나요?

– 원고 투고 : 카이스트(KAIST) 바이오및뇌공학과를 졸업하고, 의식과학 분야를 연구 중인 장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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