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이상합니다. 선풍기를 오랫동안 사용하다 보면 날개에 먼지가 잔뜩 쌓여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선풍기는 전동기 축에 장치한 날개를 회전시켜 바람을 일으키는 기계입니다. 지속해서 회전하므로 먼지가 쌓일 틈이 없어 보이는데, 작동하지 않는 동안에 붙었던 걸까요?
먼지가 붙었다고 하더라도 선풍기를 작동시키면 다 날아가 버렸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런데도 선풍기 날개의 먼지는 떨어지지도 않고, 잘 붙어 있다는 게 의아합니다. 선풍기 날개에 어떻게 먼지가 쌓여 있는 걸까요?
이와 관련한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경계층(boundary layer) 이론을 알아야 합니다. 경계층 이론은 독일의 물리학자 루트비히 프란틀(Ludwig Prandtl)이 1904년 독일 하이델버그에서 개최한 국제 수학자 콘퍼런스에서 발표한 이론으로 유체역학과 항공역학에 지대한 공헌을 했습니다.
경계층의 개념부터 설명해보면 공기는 변형이 쉽고 흐르는 성질을 가진 유체입니다. 모든 유체는 점성을 가지고 있으므로 유체가 다른 물체와 마찰하면 점성이 생깁니다. 그러니까 고체 표면(≒다른 물체)을 흐르는 공기(≒유체)는 고체 표면과의 마찰로 점성이 생기고, 점성에 의해서 속도가 감소합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위의 그림을 참고하길 바랍니다. 공기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흐르는 도중에 고체 표면을 만나는 상황이고, 유체입자 아랫부분이 고체 표면과 마찰할 때 점성이 생기면서 붙는 과정을 표현한 그림입니다. 그러니까 경계층은 물체 표면에서 유체입자가 멀어질 때 증가하는 속도가 일정해질 때까지의 거리를 말합니다.
즉, 유체입자와 고체 표면이 붙는 얇은 층을 경계층으로 분류할 수 있고, 경계층 바깥은 비점성 영역으로 점성의 영향을 무시하는 완전유체(점성이 전혀 없는 가상적인 이상유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선풍기 날개에 먼지가 붙을 수 있고, 회전하는 선풍기 날개는 바깥쪽으로 가면서 층류에서 난류로 변합니다. 층류에서는 직선으로 흐르던 바람이 난류에서는 소용돌이를 형성하고, 고체표면과 접촉을 더 잘하므로 날개의 바깥쪽에 먼지가 더 많이 쌓입니다.
소용돌이치므로 더 잘 안 쌓일 거로 생각하겠으나 바람이 흐르는 모습을 평균적으로 보면 층류에서나 난류에서나 큰 차이는 없습니다. 만약 선풍기 날개에 먼지가 너무 많이 쌓여서 경계층을 넘으면 먼지는 날개에 붙지 못합니다.
그렇다면 선풍기 날개에 먼지를 덜 붙게 하려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유체입자와 고체표면의 마찰을 줄여주면 됩니다. 예를 들면 날개에 왁스를 발라서 코팅해주는 건데, 선풍기 날개는 금방 청소할 수 있으므로 여름 동안 잘 쓰다가 치우기 전에 청소해주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이 현상을 실험을 통해 알아봤습니다. 안경알 위에 제 머리카락을 잘라서 올려놓았고, 손풍기 바람을 쏴줬습니다. 휙 날아갈 것으로 생각하겠지만, 안경알, 그러니까 고체 표면과 유체입자가 형성한 경계층에 머리카락이 갇히면서 쉽게 날아가지 못하는 모습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추가로 무언가를 씻을 때 물로만 헹구는 경우가 많은데, 물도 유체입니다. 따라서 물과 고체 표면이 형성한 경계층에 갇힌 미세한 이물질은 물로만 헹궈서는 쉽게 제거할 수 없습니다.
물로만 제거하기 위해서는 오랫동안 흐르는 물에 놔두거나 수압이 강한 물을 이용해야 하므로 손을 씻을 때나 설거지를 할 때나 물리적인 힘을 가해줘야 합니다. 궁금증이 해결되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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