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은 당장 눈앞에 주어진 현실 상황에서 벗어나 기억된 생각이나 내가 원하는 모든 상황을 머릿속에서 영상으로 떠올리는 일을 말합니다. 이처럼 감각기관에 대한 자극 작용 없이 머릿속에 떠오르는 영상을 심상(imagery)이라고 하는데, 사람들은 떠올린 심상을 조작하여 계획을 세우고 그에 따라 행동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실제 보고 있는 것도 아니면서 영상을 떠올린다니 의문이 생깁니다. 어떻게 상상을 할 수 있는 걸까요?
사람에게는 여러 감각기관이 있으나 이 분야와 관련해서는 시각적 심상에 관한 연구가 가장 활발하므로 시각적 심상에 한해서 이야기해보겠습니다.
뇌과학자들이 밝혀낸 내용에 따르면 시각적 상상은 무언가를 볼 때 뇌에서 일어나는 과정이 반대로 일어나는 것과 유사하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사물을 볼 때는 안구에서 뇌의 뒷부분에 있는 시각피질에 정보가 먼저 전달되고, 그 정보가 뇌의 앞부분을 타고 오면서 어떤 물체임을 인식하게 되는데, 상상할 때는 반대로 뇌의 앞부분이 뒷부분을 자극하는 과정을 거칩니다.
구체적으로 알아보면 먼저 전전두엽(prefrontal lobe-①)과 같은 뇌의 집행 시스템이 상상을 하기로 결정합니다. 이때 무엇을 상상할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이후 측두엽(temporal lobe-②)에 위치한 기억 시스템이 상상할 대상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면 감각 지각 시스템(③)이 실제 감각을 하는 듯한 효과를 일으키면서 상상을 할 수 있게 됩니다.
이와 관련해 2019년 마리오 센덴(Mario Senden) 연구팀은 피실험자에게 알파벳을 보여주거나 상상하게 하고, 고해상도 MRI로 시각피질의 뇌 활동을 촬영했습니다.
그 결과 알파벳을 실제 보았을 때와 상상만 했을 때 유사한 뇌 활동이 일어났음을 확인할 수 있었고, 더 나아가 어떤 알파벳을 상상했는지 해독까지 할 수 있었습니다.
단, 상상과 시각이 정말 똑같은 메커니즘에 의해 일어나는지에 관해서는 논쟁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뇌 손상 환자 중 시각은 정상이나 시각적 상상을 하지 못하는 환자도 있고, 그 반대의 경우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확실한 것은 상상할 때 뇌에서는 실제 경험할 때와 비슷한 뇌 활성을 자체적으로 만들어낸다는 겁니다.
여기까지 상상의 과정을 살펴봤는데, 심상을 시각화하는 능력이 없는 사람도 있습니다. 한 조사자료에 따르면 인구의 약 1%가 해당하고, 이러한 증상을 아판타시아(aphantasia)라고 합니다.
이 증상을 가진 사람들은 무서운 이야기를 읽어도 시각화하지 못하므로 몸이 반응하지 않습니다. 애니메이션 제작사로 유명한 픽사(Pixar)를 창업한 에드윈 캐트멀(Edwin Catmull)도 상상하는 능력이 없었다고 하는데, 그것이 3D 그래픽에 관한 업적을 세우는 원동력이 됐다는 이야기가 잘 알려졌습니다.
추가로 상상과 관련해서는 환자의 의식 상태 진단에 활용할 수도 있습니다.의학적으로 생명 유지는 할 수 있으나 대뇌가 손상되어 의식이 없는 상태를 식물인간 상태라고 합니다. 그런데 식물인간 환자 중 일부는 의식이 남아 있음에도 모든 근육이 마비되어 외부와 소통하지 못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상태를 감금 증후군(locked-in syndrome)이라고 하는데, 2006년 에이드리언 오언(Adrian Owen) 연구팀은 감금 증후군으로 의심되는 환자에게 테니스를 치는 것이나 자기 방 안을 돌아다니는 것을 상상하도록 지시했습니다.
일반적으로 테니스 치는 상상을 하면 몸의 움직임을 담당하는 운동피질이 활성화되고, 방 안을 돌아다니는 상상을 하면 공간지각을 담당하는 해마옆이랑(Parahippocampal gyrus)이 활성화됩니다. 만약 환자에게 의식이 있어서 지시사항을 수행한다면 환자의 뇌에서 운동피질과 해마옆이랑이 활성화될 겁니다.
결과를 보면 연구팀은 환자의 뇌 활동을 관찰하여 의식이 있음을 확인하는 데에 성공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검진 방법은 2010년 마틴 몬티(Martin M. Monti) 연구팀에 의해 더 대규모로 검증되었습니다.
연구팀은 54명의 식물인간 환자를 대상으로 어떠한 질문을 던진 다음에 “예”라고 답하고 싶으면 테니스 치는 상상을, “아니오”라고 답하고 싶으면 방 안을 돌아다니는 상상을 하도록 했습니다.
이 실험을 통해 5명의 환자가 스스로 뇌 반응을 조절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는데, 그렇다면 전체 식물인간 환자 중 약 10%는 의식이 있다고 추측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상상 능력을 통해 환자에게 의식이 있는지도 판단할 수 있습니다. 궁금증이 해결되셨나요?
– 원고 : 카이스트(KAIST) 바이오및뇌공학과를 졸업하고, 의식과학 분야를 연구 중인 장현우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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